몽실언니
몽실언니
  • 이지수<청주중앙초 사서교사>
  • 승인 2016.08.01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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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이지수

작년 이맘때 여름, 경북 안동으로 권정생 선생님을 찾아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경부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두어 시간 달려 달려 맨 처음 도착했던 곳은 故 권정생 선생님의 이름자를 딴 ‘권정생 동화나라’였다.

선생의 성함자를 딴 아름다운 장소임에도 내 눈에는 왜 그리 허무하게만 비치던지…. 가꾸지 않아 웃자란 풀들과 뙤약볕에 노쇠해져 보이는 동화 속 주인공들과 부러진 강아지 똥의 민들레 잎사귀까지 이글거리는 태양에 맞서지 못하고 겨우겨우 힘겹게 버티고 있는 듯 보였다.

분명 선생님의 유서에는 이렇게 황량한 건물을 마련해놓으라는 적은 없었다. 정작 본인은 못 입고 못 드시고, 좋은 옷도 없이 좋은 집에서 한 번도 살아본 적 없이 모으신 원고료와 사후 인쇄가 북한어린이도 아니고 이 땅의 어린이에게도 아닌, 소위 시간이 멈춘 듯 보이는 박물관자리 하나 마련하는 것으로 본분을 다하는 것으로 이해한 것 같아 괜한 슬픔도 느껴졌었다.

선생님의 유지가 남기신 물질적 유산이 잘 쓰였으면 하는 계산적인 엄마와는 달리 딸아이와 아들아이는 그저 그림책과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보던 막둥이(권정생 원작 그림책 ‘엄마 까투리’를 애니메이션으로 각색되었을 때의 꿩 병아리 이름) 모형을 보고선 반가움을 주체 못했다. 마치 막둥이가 살아있는 것처럼 애벌레도 주고 머리도 쓰다듬어주느라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래, 그래도 동화나라가 있어 이렇게 권정생 선생님과 아름다운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을 만나고 생각해볼 수 있으니, 이곳이 있어 이 또한 우리 어린이들에게는 큰 의미가 아닐까 싶다.

권정생 동화나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선생님이 사셨던 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돌아가실 때 흙집 생긴 그대로 원래 없었던 것처럼 집도 없애라 하셨다는데, 이 유언을 받들지 않으신 분들께 너무 감사했다. 선생님의 발길이 닿았을 방문, 부추밭, 마당, 개집, 수돗가 그리고 빌뱅이 언덕까지…. 선생님은 여전히 그곳에 살아계셨다.

한지로 감싼 방문 안을 들여다보면 그리운 권정생 선생님의 사진이 보인다. 저 좁디좁은 곳에서 평생의 반갑지 않은 병마와 더불어 사시면서도 주변의 하찮고 약하고 이름없는 것들에 따스한 손길을 보내어 그들을 삶 속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셨던 故 권정생 선생님.

내가 가지고 있는 ‘몽실언니(창비, 2015)’는 개정되어 이철수 판화가가 색을 다시 입힌 책이다. 선생님과 관련된 것이라면 기존에 있던 것이나, 새로 개정되는 것이나 모두 곁에 두고서 내 아이들에게 두고두고 읽어주고 싶어진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내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라고. 나는 사실 이점 때문에 권정생 동화 읽기를 주저하는 분들을 만난 적도 많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몽실언니 시절과 얼마나 달라져 있는가? 주변의 환경, 물질적인 풍요는 달라지었을지언정 사람들은 그대로는 아닐까? 여전히 억압하는 사람이 있고, 여전히 억울한 사람이 있고 여전히 … 힘없이 당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여전히 선함과 악함의 그 이분법적인 좁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밝고 맑고 깨끗하고 선함을 추구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정함에서 사람 사는 이 세상을 조금 더 진솔하게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몽실언니는 현재진행형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읽어도 충분히 좋은 동화라고, 그리고 어른이 다 된 우리에게도 몽실언니는 때때로 아주 큰 위안을 주고 있노라고 이 글을 통해 다시금 일러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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