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불가능한 존재
대체 불가능한 존재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6.07.3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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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돼라.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잠식하기 시작한 21세기를 버틸 수 있는 생존전략은 이렇게 간단명료 하다. 로드 주드킨스라는 영국작가가 쓴 책 제목이기도 하다.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되려면 창의, 열정, 성실, 모험심, 상상력, 유머 등등 숱한 덕목을 불굴의 의지로 실천해야 한다는 일종의 자기계발서다. 수십개에 달하는 소제목들을 보면 숨이 가빠진다. 안전지대를 벗어나 모험을 감행하라, 배고픔을 유지하라, 운명은 우리를 이길 수 없다,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라, 날마다 급진주의자가 돼라, 해답을 찾지 말고 관찰하라, 즉흥적인 능력을 키워라 등등 멋진 구호들이 줄을 잇지만 내게는 불가능한 주문 일색이라 열패감만 들 뿐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어느 누구도 역할을 대신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얼마전 신문에서 보고 감탄을 연발했던 일본의 프로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떠올랐다. 그는 각 팀의 간판 선수들만 출전한 올해 올스타전에서 4타수 3안타를 터트려 MVP에 뽑혔다. 홈런 레이스에도 나가 1등을 했다. 놀라운 사실은 그가 투수라는 점이다. 그것도 올 시즌에서 현재까지 탈삼진 1위에 8승을 기록 중인 정상급 투수다. 투수로 출장하지 않는 날은 타자와 야수로 나가 활약한다. 후반기들어서는 타율이 5할에 육박한다. 축구로 치면 골키퍼가 골을 많이 넣어 득점왕이 된 경우와 비교할 수 있겠다. 세계 야구사를 통틀어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천부적 재능의 소유자다.

그의 넘치는 재능과 실력을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렇다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이기도 할까. 야구장에서 그의 운명은 구단주나 감독에 달려있다. 구단이 결정하면 다른 선수에게 자리를 내줘야 하고 다른 팀에 팔려갈 수도 있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는 그가 아니라 구단의 소유주다. 구단을 팔아치우지 않는 한 누구도 그의 지위를 대체할 수 없다. 배고픔을 유지하고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거나 날마다 급진주의자가 되지않고도 그는 대체불가능한 독보적 존재로 군림하는 것이다.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이 최근 3년 동안 운전기사를 12명이나 갈아치웠다. 3년간 61명을 바꿨다는 보도도 나왔다. 신호위반과 과속 등 불법운전까지 강요받는 매뉴얼에 폭행과 폭언에까지 시달렸으니 운전기사 본인이 참지못하고 그만 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수모와 스트레스를 겪다못해 그만두는 운전기사가 달마다 발생했지만 후임 기사는 곧바로 충원됐다. 알량한 대기업 수준의 급료가 영향을 미쳤을 터이다. 정 사장이 가혹한 갑질을 멈추지 않은 것도 운전기사들은 언제든지 ‘대체가능한’ 소모품으로 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반면 세습 경영인인 본인은 대체불가능한 존재다. 회사가 망하지않는 한 언제까지 제왕적 권력으로 직원들에 군림한다. 그가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된 이유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 하나 뿐이다.

피고용인이 대체불가능한 경지에 이른 경우도 있다. 우병우 청와대 정무수석이다. 껍질을 깔 때마다 새로운 의혹이 튀어나와 양파맨이 돼버린 지 오래고, 여야를 불문하고 사퇴론이 들끓지만 그의 입지는 요지부동이다. 단 한 사람의 절대 신임만으로도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한국적 현실은 금수저가 아니라면 금줄이라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되어 과학이 인간을 따라잡겠다고 나선 21세기를 보란듯이 살아보자는 현인들의 조언이 와닿지 않는 이유다.

그 보다 우리에게 시급한 과제는 대체불가능한 존재들을 대체가능한 존재로 바꾸는 것이다. 운전기사를 학대했다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인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이런 문제로 대체된 사람은 거의 없다. 대체가능한 존재들의 분노와 항변은 언제나 무기력했다. 대체불가능한 인물이 아니라 대체불가능한 가치와 규범을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병원 치료가 필요한 성격파탄자나 양심은커녕 한줌의 염치나 죄의식조차 없는 인물들까지 대체불가능의 지위를 차고앉아 불멸의 세도를 누리는 봉건적 행태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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