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아버지의 기쁨이
여기 아버지의 기쁨이
  • 이수안<수필가>
  • 승인 2016.07.3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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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이수안

며칠째 비가 찔끔거린다. 한 이틀 뒹굴뒹굴했더니 그새 과수원이 궁금해진다. 날이 새자마자 축축한 공기를 가르고 과수원으로 향한다.

사흘 만에 온 과수원은 뜻밖의 풍경으로 나를 맞는다. 아기 복숭아나무가 줄 서 있는 양옆으로 초원이 펼쳐진 게 아닌가. 한 보름 전에 승용 예취기로 면도하다시피 바짝 풀을 깎았는데, 비 맛을 보고 바랭이가 함성을 지르듯 일제히 올라오는 것이다. 풀잎마다 맺힌 물방울에 오월의 신록만큼이나 초록이 싱그럽다. 문득 초록 바다 저만치에서 환청처럼 들려오는 정겨운 음성….

“야야, 딱 한 뼘만 더 크면 되겠데이. 이 풀을 비다 주머 소가 얼마나 잘 묵겠노!”

아버지는 소를 매우 아끼셨다. 논밭으로 가실 때면 숫돌에 잘 간 낫을 꽂은 지게를 늘 지고 가셨다. 좋은 풀을 만나면 지체 없이 풀을 베기 위해서였다. 간혹 준비 없이 나가셨다가 좋은 풀을 만날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은 집에 오자마자 부지런히 채비하고 되짚어 나가고는 하셨다.

그때는 모두가 쇠죽을 끓여 먹이던 시절이라 풀이 귀했다. 민들레, 쑥, 강아지풀, 피 등과 함께 바랭이는 소가 좋아하는 풀이었다. 더군다나 이런 풀이 비를 맞아 연하게 자랐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좋은 풀을 베기 위해서라면 먼 길도 마다치 않던 아버지. 기어이 그 풀을 베어 지게 가득 지고 어둑한 마당으로 들어서고는 저녁 내내 흡족해하셨다.

아버지가 소를 아낀 것은 소가 큰 재산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난한 집의 아들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6·25동란을 몸으로 겪어내신 아버지. 가장으로서 누구보다 성실했던 아버지는 어머니와도 뜻이 잘 맞아 비탈밭이라도 한 뙈기씩 늘려가셨다. 일곱 남매 키우면서도 논밭을 늘렸으니 그 일이 오죽 많았으랴. 굶주림이 가장 무섭던 시절, 한 뼘이라도 땅을 늘리는 것이 소원이지만, 소원을 이룰수록 일이 늘어 더 고단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에게 일이 많다는 건 소의 일도 많다는 뜻이었다. 추수 때는 둘이서 그 많은 곡식을 다 날라야 했다. 소는 길마에 짐을 싣고, 아버지는 지게에 짐을 싣고, 그렇게 곡식은 들판에서 집으로 옮겨졌다.

하루는 소 등의 길마에 보릿단을 싣는데 소가 자꾸 펄쩍거리며 거부했다. 보리를 빨리 치워야 모내기를 하는데 소가 일을 마다한 것이다. 달래고 얼러도 안 되자 아버지가 몹시 화를 내셨다.

“이놈의 소가!”

아버지는 결국 소를 마구 때리셨다. 우리는 걱정스럽게 바라보았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진정시키며 말리셨다.

그날 저녁, 밥상 앞에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무거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그동안 나른 짐 때문에 등이 아파 소가 짐을 안 지려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몰랐지만 아버지는 그걸 아신 것이다. 당신의 어깨도 그만큼 아프셨을 테니까. 아시면서도 억지로 일을 시킨 그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겠는가. 노동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신 아버지, 하필이면 일 많은 집 주인을 만난 소가 딱해 그렇게도 좋은 풀이 어디 있나 늘 살피셨던 게다.

이제는 아버지도 가시고 일 소도 없는데 풀만 지천이다. 일만 늘려주는 골치 아픈 풀인데도 오늘은 싫지 않다. 싫기는커녕 잊고 지낸 아버지를 만나게 해 줘서 그저 이쁘게만 보인다.

“아버지의 기쁨이 여기 이리도 수북한데 아버지는 이제 너무 먼 곳에 계시네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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