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규
현규
  • 정명숙<수필가>
  • 승인 2016.07.28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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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정명숙

전화가 왔다. 아득한 곳에서 불쑥 나타난 목소리에 반가움이 앞섰다. 아주 가끔은 궁금해서 잘 있느냐고 막냇동생을 통해 안부를 묻기는 했어도 서로 일부러 전화할 일은 없는 사람들이다. 어쩐 일이냐고 묻는 나에게 그냥 누나 얼굴 좀 보려고 한단다. 우리 집에 도착하려면 세 시간쯤 걸린다고 한다.

막내 남동생의 고등학교시절 단짝친구다. 둘 다 성격도 원만하고 공부도 잘했다. 주말이면 우리 집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는 현규는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었다. 그 당시 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셨고 다행히 누나가 직장이 있어 동생들의 학비를 보태고 있었다. 그래도 그 녀석은 항상 웃음을 달고 있어서 좋았다. 매사가 긍정적이어서 내 동생처럼 밥상을 차려주고 같이 농담도 하고 지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동생은 서울의 공과대학을 택하고 환규는 지방의 국립대학으로 진학하면서 우리식구들과 환규는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까까머리 고등학생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그가 대기업의 임원이 되어 장년의 모습으로 찾아왔다. 한집안의 장남으로 삶의 길이 만만치는 않았겠지만 그는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통영에 상가가 있어 다녀오는 길에 들렸다고 했다. 주말이라 서울로 올라가려면 길이 막힐 것 같다고 오자마자 서두르는 현규는 서류봉투와 쇼핑백을 내게 건네준다. 휴양지 호텔의 숙박권과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티켓, 그리고 유명화장품이었다.

“고등학교 때, 내가 돈을 벌면 누나에게 제주도 여행을 꼭 보내주려고 했었어요. 약소하지만 받으세요.”

70년대 후반, 그 시절에는 세계여행은 꿈같은 일이었고 제주도 여행이 제일이었다. 냉커피 한잔을 마시고 금방 떠나는 그를 배웅하며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저 동생친구이니 동생처럼 대해 준 것밖에 없다. 그냥 지나쳐도 될 일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 그동안 마음의 부담은 크지 않았는지 오히려 안쓰러웠다.

현규가 다녀간 후, 잔잔하게 일렁이는 감동의 물결 깊은 곳에서 부끄러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과거의 일들은 시간에 휩쓸려 스러졌다고 생각했었다. 과거의 시간들이 쌓여 현재가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들이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흘려보낸 내가 한심스러웠다.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처음부터 나에게 글을 쓸 수 있게 동기를 부여해준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힘든 고비를 넘길 때마다 손을 잡아주고 위로해 주던 이들에게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진정한 마음으로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을까.

무시로 절망 끝에 내몰리는 게 삶이다. 현규도 높은 지위까지 오르면서 숨 가쁜 날도 많았을 터이다. 허나 그의 성공에는 분명한 그만의 법칙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고마웠던 일만 마음에 두고 아무 인맥 없이 스스로 내공을 쌓아서 이룬 성공이다. 그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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