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연가
눈물의 연가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 승인 2016.07.27 2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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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눈물을 사랑합니다. 아니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사그라져 가는 하얀 그믐달을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 맺히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슬픈 장면이 나오면 눈물을 훔치고, 슬픈 음악이 흘러나오면 눈물이 핑 도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측은지심이 있는 사람은 눈물의 의미를 압니다.

참담한 실패와 혹독한 좌절을 겪어 본 이는 눈물의 고마움을 압니다.

배신과 이별로 밤을 하얗게 지새워본 이는 눈물의 깊이를 압니다.

죄를 짓고 뜨거운 회개의 눈물을 흘려본 이는 눈물의 가치를 압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뜨거운 눈물을 흘려보지 않고는 인생을 논할 수 없습니다.

눈물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눈물이 없는 사람은 경원합니다.

슬퍼서 울고, 아파서 울고, 분해서 울고, 기뻐서 울고, 고마워서 우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입니다.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 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함께 울어줄, 따뜻한 동행이 되어줄 사람이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아직도 그런 사람이 곁에 없다면 우는 이의 벗이 되어 함께 울어주세요.

슬플 때나 서러울 때 누군가를 부둥켜안고 함께 울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안이 되고 치유도 됩니다.

내 눈물을 닦아주는 이가 옆에 있다는 건, 함께 울어줄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건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이순이 넘은 나인데도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야속하게도 눈물이 나지 않는 거예요.

나이가 들면 체력만 고갈되어 가는 게 아니라 눈물도 그렇게 메말라 가나 봅니다.

아마도 눈물이 사치일 만큼 삶이 각박해져서, 감동불감증이 깊어져서 그럴 겁니다. 아니 속 울음이, 마른 울음이 몸에 배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따금 조용필이 불러 히트한 ‘그 겨울에 찻집’이란 노래를 부릅니다.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라는 노랫말에 필이 꽂혀서입니다.

한숨 뒤에 나오는 눈물,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그 깊고 푸른 사랑을 동경하는 탓입니다.

눈물은 눈알 바깥 면 위에 있는 눈물샘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이릅니다.

늘 조금씩 나와서 눈을 축이거나 이물질을 씻어 내는데, 자극이나 감동을 받으면 더 많이 나오는 특성이 있지요.

눈물의 최고봉은 단연 회개의 눈물과 화해와 용서의 눈물입니다.

눈물의 미학이 바로 거기에 있으니까요.

보릿고개 때문에, 시집살이가 힘들어서, 친정엄마가 보고 싶어서 흘렸던 한 많은 눈물은 이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유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민초들의 서럽고 억울한 눈물이 남아 있습니다.

무전유죄에 울고, 스펙에 울고, 세월호에 울고, 갑질에 울고, 외롭고 고독해서 울고, 아파서 우는 눈물이 홍수를 이룹니다.

이제 더는 이 땅의 민초들이 그런 안타까운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

기뻐서 울고, 반가워서 울고, 대박 나서 울고, 오랜 꿈들이 이루어져서 기쁨의 눈물이 바다를 이루는 복된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동족상잔의 쓰라린 눈물과 천만 이산가족들의 한스런 눈물을 닦아줄 초인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분단의 질곡을 허물고 평화통일을 이룰 초인이 있어 남북의 동포들이 서로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릴 그날이 오면 웃다가도 울고 자다가도 기뻐 눈물 펑펑 흘리겠습니다.

그날을 생각하니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시인ㆍ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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