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그친 뒤
비 그친 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6.07.27 1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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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의 시 읽는 세상

 

 

 

 

 

 

이 정 록

안마당을 두드리고 소나기 지나가자 놀란 지렁이 몇 마리 서둘러 기어간다 방금 알을 낳은 암탉이 성큼성큼 뛰어와 지렁이를 삼키고선 연필 다듬듯 부리를 문지른다

천둥 번개에 비틀거리던 하늘이 그 부리 끝을 중심으로 수평을 잡는다 개구리 한 마리 안마당에 패대기친 수탉이 활개치며 울어 제끼자 울 밑 봉숭아며 물앵두 이파리가 빗방울을 내려놓는다 병아리들이 엄마 아빠 섞어 부르며 키질 위 메주콩처럼 몰려다닌다

모낸 무논의 물살이 파르라니 떨린다 온몸에 초록침을 맞은 하늘이 파랗게 질려 있다 침 놓은 자리로 엄살엄살 구름 몇이 다가간다 개구리 똥꼬가 알 낳느라고 참 간지러웠겠다 암탉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논 쪽을 내다본다

# 된더위를 달래듯 비가 왔습니다. 짧게 비 온 뒤 솟아나는 생명력은 동물과 식물이 따로 없습니다. 지렁이도 개구리도 봉숭아도 물앵두도 병아리도 생존이라는 무대로 우르르 몰려나와 한바탕 분탕질을 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한 공간에서 참으로 말갛게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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