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의 대화
나무와의 대화
  • 안승현<청주시문화재단공예세계화팀장>
  • 승인 2016.07.26 2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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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안승현

간만에 의자에 앉았다. 잘 쓰지도 못하는 글을 써 보겠노라 응하고 늘 고민에 빠진다. 일상이 너무 정신없는 터이라.. 밤늦은 시간에 책상을 맞이하게 된다.

이내 눈이 가는 곳은 글이 나열되어야 하는 노트북이 아니라 책상의 한 부분. 나뭇결이 평이하게 가다 한곳에서 끊기고 이내 다른 나뭇결이 끊긴 부분을 에워싼 부분. 옹이가 썩어 홈이 파인 부분, 어딘 성글고 어딘 촘촘히 나있는 나뭇결들..

참으로 많은 일을 겪은 나무인 듯싶다. 워낙 넓은 판의 나무라 그럴 만도 하겠지, 보이는 나이로만 봐도 50 이상의 나이테를 가졌으니.

공예분야에서 일하게 되고 가장 가까이하게 된 것이 나무다. 땅에 뿌리내리고 있는 나무건, 베인 나무건 나무라는 것에 무한한 감동과 경이로움, 그리고 함께 함에 행복을 느낀다. 씨앗에서 발아되어 자라고, 나이가 들어 이젠 내 터에 들어와 삶의 일부가 되어 함께 함에 늘 살아 있음을 느낀다.

우린 일상생활에서 가구를 많이 사용한다. 나무를 재료로 만든 가구의 경우, 나무에서 나온 부산물을 가지고 가공한 것에서 원목이라 하는 것까지..좀 감각이 있다 싶으면 외형의 디자인을 기준으로 집안에 들인다.

나무가 가지고 있는 나뭇결이 좋아 선택하게 되는 경우는 흔치 않을 듯싶다.

나무는 나무의 종류에 따라 단단하기와 색, 그리고 목리가 다양하다. 같은 수종이라 하더라도 자란 토양과 기후 등 환경의 조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에, 나무와 대화를 한다는 것은 가슴이 벅차오르고, 많은 가르침을 받기에 충분하다.

나무가 살아온 시간의 흔적, 투쟁과 영역의 확장에 따른 희열 등등

나무를 소재로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것은 욕심을 버려야 한다. 가능한 최소한의 가공을 통해 나무 본연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도 그러하겠지만, 더 좋은 나뭇결을 얻고자 대패질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무의 성장에서 가장 극적인 상황극을 보려고 욕심을 가지다가는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를 다룬다는 것은 손을 뗄 때를 알아야 한다. 작업하는 도중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손을 떼야 한다. 이것은 나무와 내 손에 들려 있는 도구와의 호흡이다.

이 호흡은 도자기를 빚을 때도 그러하지만, 나무와의 만남에선 한 가지가 더 있다. 이 호흡은 덜어내고,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잘 받지 못했던 상(?)이 많다. 아이들 침대 머리맡에 있는 해주반, 방바닥에서 공부하는 나주반, 손님이 오면 다과를 내는 호족반, 찻상으로 쓰이는 구족반 등 상(소반)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같은 형태의 상(소반)을 놓고 상판의 나뭇결을 보면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 소반 저 소반을 번갈아 사용한다. 나무와의 대화이다. 같은 수종의 나무더라도 살아온 세월의 시간과 환경이 다르기에 말이다. 나무를 접하는 시간은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다.

버릴 것 하나 없는 게 나무이다. 조각이 나 버려야 할 것 같지만 잘만 손질하면 지칼도 만들고, 샤프연필, 만년필도 만든다. 가끔 버려지는 나무 도마를 주워다 스툴을 만들고, 브레드보드나 트레이를 만들어 보기도 한다. 너무나 다양한 나무의 성격과 나뭇결에서 내가 속한 삶의 영역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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