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令)은 어떻게 서는가
영(令)은 어떻게 서는가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6.07.2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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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 조선시대 청백리의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파면 감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아들을 ‘꽃 보직’에 앉힌 경찰청 간부들.

그들은 알아서 기었다. 민정수석의 아들이 휘하 부대에 의경으로 입대한 사실을 알고는 경찰청 규정을 어기면서 서울경찰청 경비부장 운전병으로 전보 발령을 냈다. 시위 진압 자원인 의경을 ‘고위 장교’의 운전병으로 전보시키는 것은 그야말로 특혜다.

여론은 빗발치고 있다. 당장 군인권센터는 이번 일을 병사 평등권 침해 및 차별 행위로 규정하고 당시 보직 변경에 관여한 경찰 간부를 처벌해 달라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한 전직 총경은 “명백한 보직 비리이고 병역 부패”라고 일갈했다.

공교롭게 당시 민정수석의 아들을 운전병으로 데리고 있던 사람은 지난해 12월 청와대의 ‘심사’를 거쳐 치안감으로 무난히 승진했다.

1500만원짜리 금장 롤렉스 시계를 차고 청와대에 들어간 사나이. 여러 가지 다른 의혹은 차치하고 어떻게 이런 인선이 있을 수 있을까.

우 수석은 2013년 검사장 승진 탈락 후 변호사로 일하다 1년 만에 청와대로 복귀했다. 이후 8개월 만인 2015년 1월 감사원장보다 힘이 세다는 민정수석비서관이 됐다.

세간을 놀라게 한 건 두 달 후인 3월 25일 처음 공개된 그의 재산명세였다. 무려 409억원을 신고했는데 부인 명의의 재산 말고도 자신의 예금 재산이 35억원, 여기에 1500만원짜리 롤렉스 시계와 4000만원짜리 호텔 피트니스 회원권도 있었다.

 

 # 공직자의 영(令)은 어떻게 서는가

 목민심서 치장(治裝) 편에 이런 기록이 있다. “참판 유의(1734~미상)가 홍주를 다스릴 때 찢어진 갓과 성근 도포에 찌든 색깔의 띠를 두르고 조랑말을 탔으며 이부자리는 남루하고 요도 베개도 없었다. 이렇게 위엄을 세우니 간신배가 모두 숨을 죽였다.”

다산이 홍주목에 찰방으로 좌천됐을 때 당시 목사였던 유의의 모습을 생생히 기록한 글이다.

다른 기록도 있다. “유의에게 공사를 논하고자 편지를 보냈으나 답장이 오지 않았다. 훗날 찾아가서 따져 물었더니 그는 하인에게 편지 상자를 열게 했다. 그 안에는 뜯어보지 않은 청탁성 편지가 수두룩했다. 유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수령으로 있는 동안 사사로운 편지를 뜯어보지 않소’”

세종 때 함길도 감사였던 정갑손(1396~1451)이 서울에 다녀오다 향시 합격자 방을 봤는데 아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시관장을 불러 “아첨하려고 실력이 없는 내 아이를 급제시켰다. 이는 관의 기율을 어지럽히는 부정이고 임금을 기만하는 죄”라며 꾸짖고 아들의 이름을 합격자 명부에서 지워버렸다. 시관장은 파면됐다.

늘그막의 황희 정승은 호조판서였던 아들(치남)의 새집 집들이에 갔다가 이런 말을 한다. “청렴한 선비가 비가 새는 집에 살면서 정사를 살펴도 나라가 걱정스러운데 이런 호화로운 집은 뇌물이 성행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자리를 박차고 나오니 백관이 모두 따라나왔다. 아들은 곧 집을 처분하고 조그만 집으로 이사했다.

1500만원 짜리 롤렉스 시계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400억원대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 기부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공무원. 누가 그를 우리나라 최고 사정 책임자로 뽑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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