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키우는 마을<후쿠오카 유휴인에서>
생명을 키우는 마을<후쿠오카 유휴인에서>
  • 이은희<수필가>
  • 승인 2016.07.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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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은희

마을 속으로 들어갈수록 흥미로워진다. 한길로 죽 뻗은 길가에 상점들이 오종종 자리한다. 거리의 표정은 소박하고 수수하다고 할까. 아니 아기자기하다고 해야 맞을 성싶다.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듯 자연스러운 시골 풍경에 사로잡힌다. 거리의 상점들은 자신만의 색깔을 잔잔히 드러낸다. 수십 호의 상점들이 잘 어우러져 조화롭다. 그들만의 삶의 문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 골목길이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상점을 벗어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담장 아래 도랑물이 졸졸졸 흐르고 도랑을 따라 작은 꽃과 들풀이 반긴다. 또 벽돌 담장 위에는 연초록 다육식물이 늘어져 늦봄의 정취를 더한다. 좁은 담장 위에 식물을 키우는 주인의 심성이 느껴져 흐뭇하다. 곳곳에 서정이 넘친다. 한 줌의 흙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생명을 키우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주민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다. 다정다감하고 가슴이 넓은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리라. 방금 스쳐 온 마을 곳곳의 표정에서 드러난다. 인형 소품 가게 앞에도 붉은 벽돌을 열 단정도 쌓아 틈새에도 꽃 화분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가게 간판이나 이정표는 작은 크기의 빛바랜 목재에 알록달록 그들의 언어로 적었지만, 그 문자가 친근하다. 우리네 상점들은 자신의 상점을 돋보이고자 화려한 네온을 가로 세로로 불야성처럼 세우는 것이 대부분이지 않던가.

한 카페의 간판이 인상적이다. 찔레꽃 넝쿨을 드리운 검은 나무 벽면에 흰색으로 ‘샤갈’ 카페 이름을 적은 것이다. 찔레꽃 아니 샤갈이란 이름 덕분인가. 여러 각도로 봐도 보기 좋고 가다가 다시 돌아와 사진 한 장을 남길 정도로 여운이 남는다. 여하튼 생업을 위하여 물건을 사고팔기에 바쁠 텐데, 자기 집 앞과 주변에 크고 작은 꽃 화분과 텃밭,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이다. 생명을 키우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정작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들의 정성 어린 숨결이 마냥 부럽다.

골목에서 커피 향이 흐른다. 향을 좇으니 나이가 꽤 드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한 가지 업종에 수십 년 종사하며 제자를 키워냈고, 이제는 귀가 먹어 제자를 키우기 어려워 알고 찾아오는 사람에게만 자신이 만든 커피를 내고 있단다.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같은 일을 하며 자기 일을 즐기는 정신이 돋보인다. 커피 정원에도 자디잔 들꽃이 피어 있고 느티나무 아래 토끼가 그네를 타고 있다. 환한 미소의 토끼를 나무에 매달던 할아버지를 상상하니 그 마음이 전해지며 미소가 지어진다.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대세이다 보니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기 바쁘고, 업무에 지쳐 귀가하면 집안일로 분주하다. 어찌 보면 집은 그저 잠자는 숙소로 전락한 지 오래일지 모른다. 현대인은 정서가 점점 메마를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치닫고 있다. 미래를 이끌어 갈 우리 아이들이 흙 한 줌, 식물 한 포기 구경할 수 없는 집에서 어찌 정서가 자랄 수 있겠는가.

가끔은 삶에 작은 변화가 필요하다. 일탈을 감행하길 잘한 일이다. 지진 여파로 관광객이 줄어 한적한 후쿠오카의 유휴인 여행. 모험을 감수한 덕분에 거리도 식당도 카페도 호젓하게 누린다. 긴린코 호수가 보이는 샤갈 카페에 잠시 머물러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부린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그려낸 ‘도시 위에서’란 샤갈의 그림 속 주인공처럼 몽환적인 기분이다. 충만한 느낌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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