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인간 큰 바위 얼굴
명품인간 큰 바위 얼굴
  • 이영숙<시인>
  • 승인 2016.07.2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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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 이영숙

정자에 앉아 있노라니 바람이 훅 스친다. 미미한 향수 냄새가 풍긴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한동안 침묵했다. 향수라곤 쓰지도 않고 선호하는 편도 아닌데 아무래도 아침에 하고 나온 메이크업의 잔향일 것이다. 도시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사회적 존재로 살다 보니 도시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한데 인공향이라는 동의어로 들리니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화장품도 브랜드마다 명품기준이 다르니 나는 어떤 등급의 향기를 발한 것인가. 화장품이 고급 브랜드면 고려시대 주현에 속한 신분은 되려나?

친구를 따라 영국제 포트메리온 보타닉가든 매장에 동행했다가 안면 때문에 생각지도 않은 접시 대여섯 개를 들고 나왔다. 영국 본토 제품이냐, 중국 하청 제품이냐에 흰빛과 푸른빛으로 구분하며 등급과 가격이 다르게 책정된다니 웃음이 나온다.

주부라면 한 번쯤 기웃거렸을 이 제품은 1953년, 영국의 윌리엄스 엘리스가 북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인 포트메리온에서 식탁 분위기를 화사한 정원 모습으로 변화시켜주고자 하는 의도로 테이블웨어로 디자인한 접시이다. 이제 필부의 손에도 들렸으니 우쭐한 소수자들의 품위는 조만간 새로운 브랜드를 또 창조할 것이다.

조선 시대 한 선비가 있었다. 동문수학한 벗의 회갑연에 갔다가 남루한 옷 때문에 문전에서 저지당하자 이웃에서 비단옷 한 벌을 빌려 입고 다시 찾았다. 환대를 받으며 잔칫상에 앉게 된 그는 식솔들이 차려내는 술과 기름진 고기를 옷에 연방 옷에 부었다.

주위에서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초대받은 놈은 내가 아니라 이 비단옷이니 옷이 대접을 받아야 한다며 너털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떴다는 내용이다.

명품으로 장식하면 내용물도 명품이 되는지 본말이 전도된 세상에서 무엇이 명품인가.

입술이 열리는 순간 금속성의 내용이 소매 깃의 솔기처럼 삐죽거리는 반전을 대할 때면 정품 브랜드마저 카피처럼 전락한다. 근사한 양복 입고 고무신 신은 듯한 묘한 불균형 때문이다.

소리도 메시지를 담는다. 목소리만 들어도 진위와 미추, 사람 내면에 유영하는 진선미를 가늠한다면 오버지만 이따금 사람의 눈과 입, 말씨에 귀를 기울인다. 서로 엇박자로 돌아가는 사람도 많지만, 가끔 삼 박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명품을 본 듯 횡재한 기분이다.

어니스트가 꿈꾸던 ‘큰 바위 얼굴’과의 만남이다. 주인공 어니스트가 가장 긍정적인 인물로 평가했던 시인을 만났을 때, 시인이 자신은 시처럼 살지 못하며 선과 미에 대한 믿음도 불확실한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장면이 명품으로 떠오른다. 그나마 그는 자신에게마저 정직한 사람이었다. 나다니 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 에 등장하는 ‘개더골드, 올드 스토니 피즈,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 이들은 인자함이 없는 거부, 냉혈한 장군, 혓바닥만 단단한 정치가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큰 바위 얼굴이라 할 만한 명품인간은 어떤 인물일까. 야성 그대로를 발하며 인자한 빛을 띤 장엄한 인물이 아닐까.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자신의 역할에 전력을 기울이며 솔선수범하는 일, 그것이 나와 이웃, 사회와 국가에 걸쳐 도덕적으로 합의된 가치 있는 일이고 그 가치를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명품인간이며 가장 이상적인 얼굴일 것이다.

빛과 소리는 숨길 수 없다. 맑고 청아한 청자의 기품처럼 이 시대 진선미의 바로미터가 되는 큰 바위 얼굴들의 명품 출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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