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유발자들에게 고함
분노 유발자들에게 고함
  • 정현수<칼럼니스트>
  • 승인 2016.07.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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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정현수<칼럼니스트>

시골길을 걷다 보면 사납게 달려드는 개 때문에 자주 놀란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도록 식겁하지만 개보다 더 크게 소리지르며 몽둥이를 찾아들거나 돌을 주워 던진다. 그러면 대부분의 개는 꼬리를 내리고 도망간다.

만약 개가 아닌 호랑이가 나타났다면 어떨까. 너무 무서워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두려움을 느낌과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을 분석한다고 한다. 분석 결과 대상이 나보다 약하다고 판단될 때만 분노를 표출한다. 나보다 약한 개에게 돌을 던지는 것처럼 말이다. 분노는 강자의 것이며 약자에게만 행해지는 비겁한 감정이다.

사드(THAAD)배치를 반대하는 성주 군민들 속에 외부세력이 개입됐다는 논란이 연일 뜨겁다. 성주군은 인구 4만이 겨우 넘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회지로 떠나고 대부분 노인들만 남았다. 누가 봐도 이들은 사회적 약자다.

사전 협의나 양해도 없이 사납게 달려드는 정부의 사드배치 결정은 이들에게 생사 여부가 걸린 두려움이다. 갑작스런 개의 공격에 놀란 것처럼 그들도 이 두려움을 분석했을 것이다. 참외 농사에 기대어 살던 그들의 힘만으로는 강자인 정부를 이길 수 없다. 성주군 밖의 사람도 이를 알기에 서로 어깨를 걸고 연대 투쟁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들의 연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성주군 밖의 사람들을 불순한 외부세력으로 규정했다. 시위대를 원주민과 외부세력으로 구분해 둘 다 고립시키려는 전략이다. 그러자 논란의 초점이 사드배치의 적절성에서 외부 개입의 적격 여부로 옮겨갔다.

정부가 외부세력을 차단하려는 이유는 사드배치 문제를 성주군에 국한시켜 전국 확산을 차단하고 동시에 사드배치의 부정적 여론을 흐리려는 데 있다. 이에 대응해 시위대는 사드가 한국 땅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반대하면서 전선을 확대하고 외부세력 또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연대의 손길을 전국으로 뻗치고 있다.

시위대를 무력화시키는 또 다른 전략이 정부의 엄정한 법집행이다. 정부는 국무총리에게 계란을 던지고 총리 차량의 진행을 막은 것을 폭력시위로 규정하고 이들을 색출할 전담반을 꾸렸다. 선량한 약자인 성주군민의 입장에서 보면 작금의 물리적 충돌은 정(正)과 부정(不正)의 대결이다. 힘에서는 강하나 명분에서 불리한 정부는 약자들에게 폭력 시위대라는 오물을 씌워 양쪽 모두를 부정(不正)으로 만들어 버린다. 서로의 얼굴에 오물을 묻혀 누가 더 나쁜 놈인지 분별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정부는 우격다짐으로 사드를 배치한 후 반대 여론이 가라앉기만 기다릴 것이다. 평택 대추리로 미군 기지를 이전할 때나 제주 강정에 해군기지를 건설할 때 심지어 FTA 반대 농민 집회에서도 정부는 엄정한 법집행을 표면에 내세웠다.

연대(連帶)는 약자가 강자에게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소수의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할 수 없을 때 뜻을 같이하는 이들을 모아 세를 불리고 목소리를 한데 모으는 것이다. 개인의 외침은 모깃소리에 불과하지만 연대의 목소리는 여론이 되고 혁명과 진보의 동력이 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나 있었던 민란과 봉기가 대표적인 약자들의 연대다. 강자들은 이 연대를 두려워한다. 얼마나 위협적인지 역사를 통해 학습했기 때문이다.

분노는 강자의 것이며 약자에게만 행해지는 비겁한 감정이라고 서두에서 밝힌 바 있다.

미국의 사드를 등에 업은 강자들에게 고한다. 약자들의 분노를 함부로 유발시키지 마라. 비겁한 이는 그대들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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