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에 대하여
소유에 대하여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 승인 2016.07.20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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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법정스님이 하안거를 위해 암자를 나왔습니다. 한참을 내려오다가 문득 지인이 선물한 난 화분이 생각나 부랴부랴 암자로 되돌아갑니다. 암자를 비우는 동안 난이 말라죽을 것을 염려한 때문이지요.

난을 키울 사람에게 맡기는 수고를 하고 나서야 가던 길을 재촉하는 법정스님.

법정스님의 무소유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소유의 사전적 의미는 가지고 있음 또는 그 물건입니다. 법률적으로는 물건을 전면적, 일반적으로 지배하는 일을 일컫습니다.

유의어로 보유, 소지, 소유물 등이 있습니다.

소유는 축복과 저주의 양날의 칼입니다. 내 땅이 있고, 내 집이 있다는 건 축복입니다. 소작인들의 애환과 집 없는 사람들의 비애를 생각하면 분명 그렇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들보다 재화를 많이 소유하거나 남들보다 월등히 좋은 것을 소유한다는 건 경제적 힘과 사회적 위상이 우월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때론 소유가 자신을 옥죄는 사슬이 되기도 하고, 저주가 되기도 합니다.

법정스님이 난 화분 때문에 가던 길을 돌아섰듯이, 돌보고 지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유가 과도하게 많으면 재벌가의 자식들처럼 형제들이 원수가 되어 이전투구하고, 심지어 자식들에게 죽임까지 당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소유가 어처구니없는 저주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더 많이 소유하려고, 더 좋은 것을 차지하려고 아귀다툼합니다. 숫제 소유의 노예로 삽니다.

그러나 선한 노동과 부지런함으로 일군 부는 아름답습니다.

월세와 전세를 전전하다가 내 집 마련을 해본 이는 내 집 마련의 기쁨을 압니다.

부잣집 자식들은 부모가 집을 사주어도 고마운 줄 모릅니다. 오히려 좀 더 좋은 집을 사주지 않았다고 속 원망을 합니다.

일확천금을 손에 쥔 로또 당첨자들의 말로가 좋지 않듯, 정당한 땀과 노력으로 쟁취한 부라야 기쁨이 되고 의미가 됩니다.

인간의 소유욕은 끝이 없습니다.

자전거를 가지면 자동차를 갖고 싶고, 말을 타면 종도 부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소유의 기쁨은 잠시뿐입니다.

새 옷을 사면 며칠은 기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옷을 사면 이내 잊혀 집니다.

그렇습니다. 더 좋은 소유를 하면 전 소유물은 중고품으로 전락하거나 아예 쓰레기통에 버림받습니다. 속된말로 똥값이 됩니다.

돈과 권력으로 물건과 물건의 지배권은 소유할 수 있으나 사람은 결코 소유할 수 없습니다. 아니 사람은 소유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배우자나 자식들을 소유로 동일시하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때 노예나 하인을 사고팔던 시절이 있었지만, 사람은 누구나 천부인권을 가진 신성불가침입니다.

내 뱃속으로 낳은 자식일지라도, 한 몸을 이루고 사는 부부일지라도 결코 내 것이 아니고, 내 것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사랑과 배려와 책임과 의무를 공유하는 동반자, 가족일 뿐입니다.

잘못된 소유의식은 이기와 집착을 부릅니다. 실망과 불행을 자초할 뿐입니다.

세상에 영원한 소유는 없습니다. 때가 되면 모두 놓고 떠나야 하지요.

그러므로 돈으로 물건을 소유하는 사람보다 돈으로 경험과 체험을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며 복된 사람입니다.

여행이든 예술 감상이든 재능기부든 좋은 체험과 경험은 그 누구도 뺏을 수 없는 인생의 자양분입니다. 아니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수 있는 원천이 됩니다.

맹모삼천지교의 교훈이 이를 입증합니다.

썩지 않고, 빼앗길 염려도 없고, 죽을 때까지 반추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들을 많이 소유하기 바랍니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 저만치 가고 있습니다.

/ 시인·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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