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넝쿨처럼
우리도 넝쿨처럼
  • 정규호 <문화기획자 ·칼럼리스트>
  • 승인 2016.07.1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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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여름은 넝쿨식물의 계절이다.

무심천 둔치, 발산리 들길이거나 어느 산길이든 천천히 따라 걷다 보면 한삼넝쿨을 비롯해 새삼, 나팔꽃, 메꽃은 물론 귀화식물이며 생태계 교란종인 가시박에 이르기까지 넝쿨식물이 지천에 널려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풍성하고 산뜻한 여름 미각을 자랑하는 수박의 붉은 과육은 가녀린 넝쿨에 의지하고, 참외며 포도, 제철이 지나기는 했지만 딸기 역시 넝쿨식물의 혜택이다.

잃어버린 여름의 입맛을 살리는 오이냉국이거나 애호박 숭숭 썰어 넣고 끓인 된장찌개는 또 어떤가. 이렇게 저렇게 얽히고설키며 자라는 넝쿨식물은 무더위에 지친 여름을 달래주는 훌륭한 선물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하여 백년까지 누리리라’라고 읊은 이방원의 하여가가 생각나는 여름.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년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라는 정몽주의 단심가와 비교되기는 하지만, 넝쿨식물들은 결코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법이 없다. 이방원과 정몽주, 둘 중 누가 옳다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역사의 승자와 패자, 그리고 가치관의 차이가 있을 뿐, 치열하게 사는 법과 현실을 초월한 신념 또한 무시될 수 없는 일. 갈수록 각박해지고 살벌해지는 세상에 넝쿨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넝쿨식물들은 무언가에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태생적 운명을 지니고 있다. 가시박처럼 풀밭을 온통 뒤덮으며 다른 식물을 못살게 하거나, 애꿎은 나무를 칭칭 감아 숨도 못 쉬게 하는 생존본능에 안간힘을 쓴다.

자세히 보면 넝쿨식물들의 그런 생존전략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철칙이 있다. 뻗어나가는 넝쿨의 끝은 직선이 없다. 끝을 돌돌 말아 무작정 앞으로만 향하는 만용 대신 뿌리로부터 시작해 제 스스로 뻗어 온 곳을 항상 뒤돌아본다.

마치 지금까지 잘 뻗어 왔는지, 너무 멀리 뻗어 나와 되돌아갈 길을 잃어버리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말, 과유불급(過猶不及)은 교각살우(矯角殺牛)와 뜻이 서로 통하니, 쇠뿔을 바로 잡으려는 수단이 지나쳐 소를 죽이고 마는 우를 범하는 건 아닌지 늘 경계해야 함을 넝쿨식물에게 배운다.

7월도 벌써 절반을 넘겼다. 다사다난하고 파란만장한, 멈추지 못하는 비극의 아수라장이 수없이 겹치는 2016년의 절반을 넘기고도 한참을 달리고 있는 우리. 늦었지만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경계해야 할 일을 잊지 않으며 되돌아 볼 여름이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

해야 할 말이 너무도 많아 오히려 말문이 닫히고 마는 2016년 7월.

우리도 넝쿨처럼 되돌아보며 경계하고, 얽히고설키며 살아갈 일이다.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오겠다는 희망. 여름은 열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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