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월 개똥장마도
오뉴월 개똥장마도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6.07.1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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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

장맛비가 내릴 기미를 보인다. 미리 물길을 열어놓고 괭이를 메고 돌아서는 농부의 어깨에 근심이 서렸다. 과수원집 식구들의 마음이 영그는 과실로 모아지고 어부는 굵은 밧줄로 뱃머리를 동여맨다. 남편이 밭둑을 둘러보더니 물길을 잡아놓고 행여 밭둑 된비알 근처에는 가시지 말라고 어머니께 당부한다.

갠 날보다 흐린 날이 더 많고 흐린 날보다 비가 흔해서 장마다. 하루 이틀 빠끔히 개는 날은 몸과 마음을 바삐 말리고 몸살을 하던 빨래도 간신히 햇볕 구경을 한다. 눈부신 볕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삭 줍듯 주워담아 보관하고 싶다.

빨리 지나가기를 고대하는 것이 장마다. 가뭄 끝에는 단비지만 길게 내리는 장대비는 근심이요, 바람을 실은 폭우는 두려움이다. 그래도 쓸데가 있어 오뉴월의 개똥 장마란다.

여러 마리 개를 키우다 보니 개똥이 오뉴월 장맛비처럼 흔하다. 가을이나 겨울에는 한곳에 모았다가 거름으로 써도 되지만 올 같은 폭염에 그랬다가는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들끓어 두고 볼 수가 없다. 남편은 매일 내질러 놓은 개똥을 화초와 나무 밑을 파고 묻는다. 내가 구시렁거리면 “개똥이 얼마나 좋은 거름인데 이 사람아, 두고 보게.” 하고 말막음을 한다.

굴러다녀야 개똥이다. 흔하고 거북한 개똥이 거름이 된 후에 화초가 때깔이 다르다. 엊그제 핀 유월 장미는 꽃송이가 손녀 얼굴만이나 소담하다. 나무는 새순이 옹골차게 터져 나오고 봄 한 철만 해도 놀랍게 쑥쑥 자란다. 가뭄에 멈칫하더니 한바탕 장맛비에 힘이 솟는지 때깔은 더 고와지고 생기가 솟는다. 할퀴고 간 생채기에 통증도 있지만 그들의 삶은 윤기가 흐른다.

개똥같이 흔한 빗줄기를 몰고 오는 장마가 마른 장마란다. 비는 기미만 보이고 가뭄과 고온다습한 공기로 불쾌지수만 올려놓는다. 곳에 따라 폭우로 사단이 났다는 소식이다. 어차피 지나갈 장마라면 비도 제때에 몰고 오는 것이 좋다. 마른 장마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가뭄으로 성장이 더디고 부실한 것은 죽어 널브러진다. 8,9월에 폭우로 흔적을 남기는데 열매를 치고, 치근거리는 잦은 비로 가을걷이를 힘들게 한다.

오뉴월의 중간에 걸터앉은 이유는 사려 깊은 자연의 배려인 게다. 봄장마가 들면 막 숨구멍 튼 생명이 견뎌 낼 재간이 없고, 가을장마는 농부의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격이 된다.

오뉴월 그 즈음이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여력을 갖춘 시기라서 목적달성을 위한 다그침인 게다. 우후죽순처럼 눈부신 성장은 여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오뉴월 개똥 장마처럼 사람의 계절에도 장마는 찾아온다. 가벼운 빗줄기야 몸살 정도지만 거센 장맛비는 걷잡을 수 없어 비옷도 우산도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맞을 비는 다 맞고 부는 바람도 맞닥뜨려야 끝이 난다. 그런 장맛비 한번 맞아보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길고 지루하지만 다행스럽게 장마는 지나간다. 침체의 늪에 빠져 바닥이 보이고 희망조차 놓아 버릴 때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해가 나면 모든 것들이 일어서기를 한다. 장마는 성장을 위한 채근이다.

늘 보는 맑은 하늘의 소중함은 장맛비를 맞아보아야 알 수 있다. 헤아려 생각하건대 오늘 내 하늘이 맑다고 교만하지 말 것이며, 기습폭우로 뼛속까지 젖어 무겁걸랑 내일은 해가 뜬다는 사실 하나만 기억해 주면 좋으리.

오뉴월 개똥장마도 가문 땅에는 옥수가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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