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욕의 모습
무욕의 모습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7.1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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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욕심 없이 산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과연 욕심 없는 삶이 가능한 것일까?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풀어야 할 화두 중 하나는 바로 이 욕심일 것이다.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것이나 무병장수의 삶을 꿈꾸는 것은 흔히 있는 욕심이지만, 이러한 욕심을 떠나서 살고자 하는 열망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명예와 재물을 다투는 세속으로부터 벗어나 무욕의 삶을 사는 공간인 무릉도원(武陵桃源)은 이러한 열망이 반영되어 나타난 상상의 공간이다.

당(唐)의 시인 유종원(柳宗元)은 한 어부(漁夫)의 삶을 통해 무욕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늙은 어부(漁翁)

漁翁夜傍西巖宿(어옹야방서암숙) : 어옹은 밤에 서쪽 바위에 자고
曉汲淸湘燃楚竹(효급청상연초죽) : 새벽에 맑은 물 길어 대나무로 불 지핀다
煙銷日出不見人(연소일출불견인) : 안개 걷히고 해 나오자 사람 보이지 않고
欸乃一聲山水綠(애내일성산수록) : 뱃노래 소리에 산과 물은 푸르기만 하다.
廻看天際下中流(회간천제하중류) : 하늘 끝 돌아보며 강 가운데 내려가니
巖上無心雲相逐(암상무심운상축) : 바위 위엔 무성한 구름만 서로 좇네.


시의 주인공은 나이 든 어부(漁夫)이다. 이 사람은 나이가 지긋해질 때까지 오로지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일을 해 왔다. 그의 생활공간은 그가 고기잡이하는 강이 전부이다.

밝은 낮 동안 내내 배에서 고기잡이하다가, 해가 기울면, 강 서쪽의 바위로 가서 잠을 잔다. 그리고 새벽이 되면, 맑은 상강(湘江) 물을 길어다가, 초죽(楚竹)으로 불을 때어 밥을 짓는다.

상강(湘江)은 호남성(湖南省)을 남에서 북으로 관통해 흐르는, 어부가 고기잡이 하는 그 강이다.

그리고 초죽(楚竹)은 그 강 주변에서 자라는 대나무인데, 그 지역이 초(楚) 땅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밥을 해먹고 어부는 곧장 강으로 고기잡이를 나간다.

새벽 물안개 걷히고 해가 나왔지만, 어부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산과 물 모두 녹색인 어디선가에서 뱃노래 소리 한 줄기가 들려올 뿐이다. 그러다 시인은 고개를 돌려 하늘과 물이 만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강 가운데로 어부의 배가 내려가고 있고, 그 배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바위 위로 흰 구름이 무심히 흐르고 있었다.

무욕의 삶을 글이나 말로 설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럴 때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을 초야에 묻혀 명리(名利)를 초월해서 사는 어부(漁夫)는 그 전범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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