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금철<수필가>
  • 승인 2016.07.18 18: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 신금철

주말 농장의 작은 텃밭에 아욱, 상추, 쑥갓, 방울토마토, 가지, 오이를 심었다.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물을 주고 밭고랑에 풀이 나지 않도록 신문지를 덮어주었다. 가끔 멸치를 다듬고 남은 것들을 땅에 묻어주며 사랑의 인사도 나누었다. 내 손으로 씨 뿌리고 모종을 심어 정성을 기울인 채소들은 싱싱하게 자라 요즘 우리 집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고 식사의 기쁨을 더해준다.

주말 농장에 갈 때면 우리 밭 옆에서 정성껏 채소를 기르시는 할머니를 만난다. 등이 많이 굽으신 할머니는 농사일이 서툰 우리 부부에게 가지와 고추 순 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할머니 덕분에 채소가 너무 수북하면 튼튼하게 자라지 못하여 솎아내야 하는 것도 배웠다.

여든이 넘으신 듯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에선 건강미가 넘친다. 호미를 들고 감자를 캐는 할머니의 손엔 세월의 흔적이 물결을 이루어 주름살 무늬가 가득하지만 힘이 있어 보인다. 열심히 일하시는 할머니에게 송구스런 마음에 흙이 묻을까 봐 끼었던 장갑을 얼른 벗어 뒤로 감추었다.

할머니는 애써 기르시어 수확한 감자를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주시며 햇감자이니 쪄 먹어보라고 하셨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나도 얼갈이배추를 몇 포기 뽑아 드리며 된장국을 끓여 드시라고 했다. 햇감자를 보니 어머니가 해주시던 감자찌개가 생각났다.

감자찌개를 하려고 감자 껍질을 벗기자니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

감자 깎는 칼로 손을 몇 번 움직이니 어느새 감자는 뽀얀 몸을 드러낸다. 할머니는 달챙이 숟갈로 한 바가지가 넘는 작은 감자를 까느라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나는 편리한 도구를 사용하여 감자껍질 몇 개를 벗겼는데도 손이 아프다.

왼쪽 팔 골절로 몇 달 깁스를 하고 고생한 뒤로 갑자기 팔꿈치와 손목 그리고 양쪽 손가락 모두가 아프다. 손이 부은 듯 부드럽지 않고 손마디가 아프고 손에 힘이 없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어깨에 파스를 붙이고 손을 자주 주무르셨다. 그때엔 으레 연세 드셔서 그러려니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손을 주물러 드리며 따뜻한 위로를 해드리지 못한 게 후회되고 죄송하여 마음이 아프다. 

나도 어느새 손주들이 셋이나 되는 할머니가 되었으니 손 등에 검은 점이 돋아나고 주름이 생기며 손이 아픈 건 당연한 일이다. 이제껏 설거지, 빨래, 청소 글씨를 쓰느라 많이 힘들었을 내 손에게 이제야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한다.

손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아주 소중한 신체의 일부다. 좋은 일에 사용되는 손은 기쁨과 보람과 감사의 손이 되지만, 죄를 짓는 손으로 인하여 가슴 아픈 일이 많은 세상이다. 노동의 고통 없이 거액의 뇌물을 받아 챙기는 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체에 해를 입히는 것들을 만들고, 남의 것을 빼앗고, 심지어는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하는 나쁜 손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손에 검버섯이 돋아나고 주름이 가득하여 곱지 않더라도 올바르게 살아온 흔적을 남기는 떳떳한 손을 간직하고 싶다. 이제 나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했던 두 손을 도움이 손길이 필요한 어떤 이를 위해서 사용하도록 힘써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