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향욱과 이강희의 충언
나향욱과 이강희의 충언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6.07.17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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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술자리였지만 정황을 보면 소신발언이었다. 동석했던 기자가 녹음기를 켜고 발언을 정정할 기회를 줬지만 그는 신분제 강화가 필요하다는 논지를 계속 유지했다.

본인은 취중 실언이라고 변명하지만 취한 상태는 아니었다는 것이 자리를 함께했던 사람들의 공통된 얘기다. 그는 기자들을 오판했던 것 같다.

기자들도 영화 ‘내부자들’에 나온 기자(논설위원) 이강희처럼 민중을 개·돼지로 부리는 1%에 오를 수있는 선민집단으로 판단했고, 그래서 공감을 얻으리라는 확신을 가졌던 모양이다. 자리를 같이 한 사람들을 동류로 보지않고서야 맨정신에 이런 말을 뱉을 수 없다.

대한민국을 민견(民犬)공화국으로 만들어야한다는 소신을 기자들 앞에서 역설한 인물이 교육부의 핵심 브레인인 정책기획관이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 하다. 아이들을 서열 매기기를 위한 무한경쟁과 입시지옥으로 내몰아 사교육시장 규모를 20조원까지 키운 나라.

그래서 투자능력을 갖춘 고소득·고학력 부모의 자식들이 세칭 일류대를 휩쓸며 학벌과 신분까지 세습해가는 나라의 교육정책을 중심에서 주관해온 인물이 그다. “출발점이 다른 데 어떻게 (결과가) 같을 수 있느냐”는 그의 말은 그가 담당했던 교육정책의 지향점을 짐작케한다.

실무 책임자로서 그가 어떤 소신을 갖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였는지, 앞으로 어떤 교과서가 만들어질 지도 가늠된다.

친일을 청산하려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어떻게 와해됐고 지금 일본이 서울 한복판에서 한국의 관리들을 불러놓고 일본군(자위대) 창설 기념식을 벌이는 것과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지, 체육관에 모인 대의원 2578명이 2577명 찬성으로 단독출마한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는 민주주의가 북한이 아닌 남한에서 어떻게 가능했는지 따위의 과거를 ‘먹고 살게만 해주면 만족할 개·돼지’들에게 논하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는 신분제를 ‘추진해야 한다’고 하지않고 ‘공고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분제가 이미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는 나름의 확신을 전제로 말을 한 것이다. 조기 정착을 위해 속도를 더 내야한다는 뜻이리라. 99%가 허수아비로 전락해가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 그른 말이 아니다.

사드 사태만 해도 그렇다. 논란이 시작되고 근 2년이 지나 설치와 입지가 결정됐지만 그동안 국민은 설득도 제대로 된 해명도 받아본 바 없다. 왜 미군은 사드 기지 반경 3.6㎞까지를 통제하는데 우리 국방부는 100m만 벗어나면 문제가 없다는 것인지, 북이 핵이나 미사일 공격을 할 경우 십중팔구 타깃이 될 서울과 수도권을 방어하지 못하는 사드를 굳이 외교·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강행하는 까닭은 무엇인지 국민들은 궁금했지만 어느날 갑자기 후보지에도 없던 성주가 발표될 때까지 충분한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영화에서 이강희는 “뭐 하러 개, 돼지들한테 신경을 쓰고 계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는 말에 이런 말도 보탰다. “어차피 그들에게는 술자리나 인터넷에서 씹어댈 안줏거리가 필요한 겁니다. 적당히 씹어대다가 싫증이 나면 뱉어버리겠죠. 이빨도 아프고 먹고 살기도 바쁘고. 우리는 끝까지 질기게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나라 민족성이 원래 금방 끓고 금방 식지 않습니까? 적당한 시점에서 다른 안줏거리를 던져주면 그뿐입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닙니다. 고민하고 싶은 이에게는 고민거리를, 물고 싶은 이에게는 물 거리를, 욕하고 싶어하는 이에게는 욕할 거리를 주는 거죠. 고민하고 울고 욕하면서 스트레스를 좀 풀다 보면 제풀에 지쳐버리지 않겠습니까”.

1%의 군림은 99%의 충성과 후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나향욱과 이강희가 한 말은 모욕적이지만 한편으론 대중의 가슴과 혈관을 두드려준 충언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권력의 주인인 국민이 권력의 임차인로부터 무기력하게 당하는 이유를 적시함으로써 99%의 심기일전을 촉구했다.

도전과 도발을 받을 때마다 망각과 외면을 반복하며 주인으로서의 권위를 포기해온 결과가 나향욱이 주창한 1% 지배론이다. 때맞춰 던져지는 안줏거리들을 좇아 우왕좌왕하다보면 진짜 동물농장의 일원이 될 수도 있다는 두 사람의 경고만큼은 깊이 담아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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