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피라미탕
추억의 피라미탕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6.07.1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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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최명임<수필가>

여름은 마음이 시끄러운 계절이다. 더위 탓도 있지만 휴가를 떠나는 무리를 보며 나도 합류를 해야 제대로 된 여름나기가 될 것 같아서다. ‘집 나서면 고생이지.’ 하면서도 싱숭생숭해지는 것은 무슨 변덕인지 모르겠다.

젊었을 때도 조무래기 셋을 데리고 나서면 고생길을 자처한 꼴이 되지만 한 바퀴 돌고 오면 해야 할 일을 잘 치른 듯 홀가분했다. 한 바퀴의 목적지는 늘 시댁이었다.

더위와 천방지축 아이들과 이동 수단의 어려움을 핑계로 남편은 시댁을 가자고 했지만, 한여름만 되면 당신의 추억 찾기 행사를 치르는 것 같았다. 가끔 그 행사가 횡포로 느껴져 못마땅했는데 추억의 한 부분이 되었다.

시댁에서 여름나기는 푸짐한 메뉴가 정해져 있었다. 보신탕과 삼계탕, 피라미탕이다. 둘은 지금도 흔한 음식이지만 남편에게 피라미탕은 질탕하게 추억도 함께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생선이 귀한 내륙지방에서 물속의 하늘거리는 은빛 피라미는 군침을 돌게 했을 것이다. 넓은 내가 있었다. 바지를 걷어붙이고 시골아이가 된 남편은 내게 들통 하나를 들려 따르게 했다. 어머니 옷을 대충 걸쳐 입은 내 꼴은 촌티를 그대로 들어냈는데 마주 보고 배꼽을 쥐기도 했다.

족대를 들고 한바탕 물살을 거슬러 오르면 나도 어기적거리며 뒤를 쫓았는데 그 찬 물맛은 더위나기에 충분했다. 그물에 걸리는 것은 가엾은 피라미 새끼 몇 마리였다. 어쩌다 물꼬 근처를 뒤지면 큼직한 빠가사리나 메기가 수염을 내리깔고 잡혀 나왔는데 대어라도 잡은 어부의 표정을 지었다.

애들과 함께 동심으로 돌아간 어른들로 넓은 내가 시끌벅적했다. 한바탕 물놀이가 끝나고 둘러앉아 수박 한쪽씩 베어 물면 여름이 내를 건너 달아났다.

성미 급한 남편이 고 작은 피라미의 내장을 끈기 있게 빼내어 손질을 하면 요리가 시작되었다. 피라미탕은 별로 거섭이 들어가지 않았다. 고추장 고춧가루 풀어 끓인 물에다 밀가루 설설 입힌 피라미를 넣고 매운 고추와 마늘과 대파, 깻잎을 뜯어 넣었다. 간장으로 간간하게 간을 맞추고 계란 몇 개 툭툭 풀어 한소끔 끓여내면 식구들은 냄새만으로도 침을 꿀꺽 삼켰다.

“생선이 얼마나 귀하면 저걸 잡아서?.”

내가 한 말이다. 남편 말인즉 옛날엔 생선이 귀하고 먹을 게 없어서 먹었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추억을 먹는 거란다, 가마솥에 푸짐하게 한솥을 끓인 이유는 이웃잔치를 하기 위해서다. 매운탕의 수준을 넘어 피라미탕이 되었던 이유다.

어머니의 손맛이 들어간 피라미탕은 이마에서 굵은 땀을 흘리게 했다. 곡주가 곁들어진 것은 당연했고 해가 저뭇하면 만찬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해 남자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나는 피라미탕을 먹어 본 적은 없지만 친정어머니가 끓여주던 추어탕 맛으로 그 맛을 가늠해보고 남편의 마음도 헤아린다.

한여름 피서지 개천은 오염되어 발을 담글 수가 없고 피라미탕도 추억이 되었다. 그 피라미탕이 그립다는 남편은 추억을 먹고 싶은 게다. 넓은 내에 은빛 피라미가 하늘거리고 족대를 든 시골 소년의 바짓가랑이가 흥건히 젖어나던 그림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우리부부가 아옹다옹 하면서도 잘 살아온 이유는 이런 맛깔난 정서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것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올 여름에도 어머니 손맛이 그립다는 예순 셋 시골소년의 넋두리를 귀담아 들어 주어야 할 것 같다. 추억을 되새겨 마음으로 먹어볼 그 맛의 그리움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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