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서 마주한 뿌리깊은 한국의 역사·문화와 直指
佛서 마주한 뿌리깊은 한국의 역사·문화와 直指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6.07.13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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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혁명, 현존하는 세계 最古 금속활자본 직지를 찾아서

④ 직지의 궤적, 파리에서 보다

꼴랭 드 플랑시 … 격변기 10년간 조선서 외교관 생활

고려청자·김홍도 그림 등 국보급 유물 수백여점 수집

세브르博 조선도자전시회·기메博 플랑시기증관 운영
▲ 세브르박물관 전경

# 직지와 꼴랭 드 플랑시

오랜시간이 고여 있는 듯한 파리국립도서관은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전문영역과 공사중이란 이유로 직지는 수장고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둑한 밀폐공간에서 긴 잠을 자고 있는 직지를 뒤로 하고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파리 거리에는 촉촉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착하지 못한 미지의 섬을 멀리서 바라봐야 하는 심정처럼 직지의 여운은 오랫동안 마음을 두드렸다. 그 여운이 가라앉기 전에 직지의 궤적을 찾아가기로 했다.

출발점은 조선의 ‘직지’가 유럽 한가운데인 파리로 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주한 프랑스 초대공사 꼴랭 드 플랑시였다.

우리에게 알려진 꼴랭 드 플랑시는 1888~1891년, 1896~1906년 두 차례 조선에 부임해 외교관으로 일했고 한국의 책과 골동품, 그림, 도자기, 우주천문학자료 등을 수집해 프랑스로 가져간 인물이라는 정도가 다다. 이중 고려금속활자본 직지를 수집해 가져간 것이 밝혀지면서 한국에서 많이 회자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면 격변기 조선 땅을 밟은 꼴랭 드 플랑시와 그가 수집해간 한국의 많은 유물은 어디에 있고, 어떻게 보관되고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직지’의 현재를 가늠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왼쪽)용 무늬가 그려진 청화백자, (가운데)조선서 외교관을 지낸 꼴랭 드 플랑시, (오른쪽)세브르박물관 큐레이터 스테파니 브롤렛

# 조선의 수집 유물, 파리의 박물관과 도서관, 학교에 기증

첫 행선지로 2014년 플랑시의 기증유물을 전시했던 세브르박물관을 찾았다. 파리 외곽에 있는 박물관은 도자기를 주제로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고풍스러운 전시장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도자기가 전시돼 다른 문화 속에서 발전시켜온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이곳에는 한국의 국보급 도자기 200여점이 소장돼 있었다. 모두 플랑시가 조선에 있을 때 수집한 유물들로 이곳에 기증했다. 용 무늬가 그려진 청화백자와 백자로 된 장군, 질박한 옹기 등 다양한 조선의 도예품은 한국에서도 보기 귀한 것들이었다.

세브르박물관은 기증자인 플랑시를 기념하기 위해 2014년 ‘한국 열광 여행가의 소설’이란 제목으로 조선도자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스테파니 브롤렛 세브르박물관 큐레이터는 “꼴랭 드 플랑시는 세브르박물관 관장과 친분이 두터웠다. 플랑시 대사는 편지를 써서 조선의 훌륭한 유물에 대해 알렸을 정도로 유물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며 “플랑시는 1889년과 1894년 두번에 걸쳐 세브르박물관에 동양의 유물을 기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플랑시 대사는 한국에서 수집한 많은 유물을 아시아박물관인 기메박물관에 회화 등을 기증했고 모교와 도서관에는 한국의 고서를 기증했다”며 “기증된 것들은 법적으로 양도할 수 없다는 것을 원칙으로 기증된 장소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는 아시아 특히 한국의 문화를 프랑스에 소개하고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수집한 유물을 박물관과 도서관에 남겼다”고 말했다.

▲ (왼쪽) 세브르박물관 한국관에 전시된 우리나라 유물, (오른쪽) 기메박물관 플랑시기증관에 있는 금동천수관음상

스테파니는 또 “플랑시는 조선을 무척 사랑했다. 10년간 조선에서 대사로 근무하면서 딱 한번 파리에 왔는데 그것도 만국박람회 때 한국전시를 도우려고 왔다. 1906년 조선을 떠날 때도 일본에 의해 강제 추방된거나 마찬가지였다”면서 “그는 조선에서 수집한 유물에 대해 수집한 곳과 용도, 제작 배경 등을 꼼꼼히 기록으로 남겼다. 수집가라기보다 연구자였다”고 들려줬다.

플랑시가 조선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는 큐레이터의 설명은 직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직지 원본 표지에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다’라고 써 넣었던 기록이 먼 타국에서 ‘직지’가 인류지식문명의 발아체로서 재탄생되는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세브르박물관에 이어 기메박물관을 방문했다. 동양 최대의 유물이 전시돼 아시아박물관으로 유명한 이곳은 아시아 국가별로 전시관이 운영될 만큼 유물양도 대단했다. 이집트 유물과 앙코르와트 유물이 압도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관과 꼴랭 드 플랑시기증관이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이곳에도 한국에 없는 국보급 금동천수관음상을 비롯해 기와, 칼, 귀걸이 등 삼국시대의 다양한 유물과 조선의 김홍도의 그림까지 즐비했다.

한국인의 얼이 깃든 이 많은 유물을 파리에서 마주한 감회는 착잡하면서도 한편으론 고맙기도 했다. 강대국의 침략으로 혼란했던 조선과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이겨내지 못하고 파괴되었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전시장 입구에 걸린 꼴랭 드 플랑시의 얼굴이 다시 눈에 띄었다. 200여년 전 동양의 작은 나라 조선을 찾은 파란 눈의 이방인이 사진 속에 놓여 있다. 프랑스 국적으로 조선을 찾아와 10여년 서울에 뿌리내리고 살았던 플랑시를 시공을 초월해 파리에서 만났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놀랍다.

조선으로 시작해 세계기록문화유산 ‘직지’로 이어지는 운명 같은 인연의 끈은 과연 어디로 이어지는 걸까. 나무의 깊은 뿌리를 보는 듯하다.

/연지민기자

yeaon@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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