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날엔
그리운 날엔
  • 임현택<수필가>
  • 승인 2016.07.1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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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

초록이 짙어간다. 황금물결이 이는 들녘 모퉁이 유유히 바람이 인다. 우리 격언에 보리 안 패는 삼월 없고 나락 안 패는 유월 없다더니, 가을에 씨를 뿌린 겨울 보리밭에 서릿발이 서서 부풀어진 보리를 꾹꾹 밟아주던 보리가 어느새 누렇게 일렁인다.

그 옛날에 시커먼 꽁보리밥이라 불리었던 보리밥이 주식이었던 시절,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았던 그때 쌀밥은 부자로 보리밥은 가난으로의 상징이었던 때도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보리밥이 별미로 건강식으로 특선요리가 되어 웰빙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높고 높은 빌딩 사이 민초의 배고픔을 달래려는 듯 아담하고 보잘것없는 보리밥집은 대게 한적한 골목이나 여느 식당의 분위기와는 달리 조금은 촌스럽고 비좁은 것이 대부분이다. 음식점 내부 노란 양은 주전자는 평온하게 품에 안겨 묵은 추억을 끄집어 올린다.

소탈함의 대표음식 보리밥, 단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한 한 끼 식사라기보다는 고향을 벗 삼아 아련한 옛 시절의 추억을 그리며 찾는 곳이다. 잘박하게 끊인 뚝배기된장찌개, 숭덩숭덩 썰어 넣은 두부와 시래기가 바글바글 끓어오르고 칼칼한 물김치 하나면 그만이다. 특히 강된장에 아삭하게 씹는 맛이 좋은 풋고추를 푹 찍어 한입 베어 물면 어머니의 맛 고향냄새가 난다.

예부터 보리는 ‘먹는 심장약’이라 불릴 정도로 고혈압과 심혈관 질환 및 당뇨에 좋다고 알려졌다. 동의보감에 오곡지장(五穀之長)으로 불릴 만큼 영양적 가치가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보리가 보리밥이다. 조금씩 젊은이들에게 외면당하면서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보리밥집, 스테이크를 두고 흔히들 ‘칼질하러 가자’라 말하는 프랑스에서 유래된 레스토랑은 외식 문화의 전부가 되다시피 했다.

서양요리가 대중에게 선 본인 것은 “손탁”이 ‘손탁호텔’을 경영하면서 서양식으로 꾸며진 레스토랑을 개점하여 한말 상류사회 각계 인사들에게 서양요리 및 커피를 제공한 것으로 손탁호텔 문헌에 남아 있다. 또한 한국전쟁이후 주둔 미군에 의해 서양요리를 습득한 한국인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서양요리 흐름이 가속화 되어 우리 입맛을 사로잡았다.

장마가 문턱을 넘어서기 전에 아침을 여는 어머니의 발걸음은 진종일 바쁘시다. 지루하게 내리는 비로 인하여 채소가 녹아내리기 전에 가지, 호박오가리를 만드셨다.

바람이 슬쩍 스쳐도 흰 머리카락이 보였다 사라졌다 하는 화장기 없는 주름진 얼굴이다. 매끄럽고 부드러웠던 어머니 손등은 사라지고 얇게 썰어놓은 호박 밑의 대나무 발처럼 두툼하고 굵어진 손마디, 거칠고 쭈글쭈글 거리는 손길로 여러 번의 햇빛을 따라가며 뒤적뒤적 뒤집으며 말라가는 오가리, 오가리가 뒤틀리면서 말라가는 모습은 애면글면 작아진 어머니의 뒷모습이었다.

지천명이 지났음에도 문득문득 돌아가신 어머니 손맛이 그리운 건 왜일까. 체한 듯 가슴 한복판이 먹먹해진다. 오가리 때문이다. 가녀린 여린 순을 뻗어 담장을 기어올라가던 호박꽃이 어여쁘지 않다는 이유로 꽃무리에서 밀려났지만 관대, 포용이란 꽃말을 가진 호박꽃, 실한 열매를 맺어준 호박, 현재는 과거의 모습이라더니 어머니가 생전에 계신다면 보리밥 그리고 호박오가리에 그리움을 달래지는 않았을 텐데.

빌딩 사이로 한 줄금 바람이 인다. 은은한 샹들리에 고풍스런 장식의 레스토랑과 상반된 시골스럽고 손때 묻은 탁자에 초록빛 자연이 옮겨온 밥상, 오가리나물 위에 촘촘히 그리움이 잇대어져 먹먹해진다. 오가리와 고즈넉한 한옥이 주는 풍경처럼 시골의 보리밭 풍경은 고향의 향수를 떠올리기에 충분한 하루였다. 배고픈 시절의 보리밥 추억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애증이 교차하며 보리밭에 추억도 함께 여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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