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 그리고 안방 문
대문, 그리고 안방 문
  • 정규호 <문화기획자 ·칼럼리스트>
  • 승인 2016.07.1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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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吾等은 慈에 我’로 시작되는 문장이 뇌리에서 계속 맴도는 2016년 7월의 대한민국. 주지하다시피 기미독립선언서인데, ‘조선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하노라’로 이어진다. ‘차(此)로써 세계만방(世界萬邦)에 고(告)하야 인류평등(人類平等)의 대의(大義)를 극명(克明)하며, 차(此)로써 자손만대(子孫萬代)에 고(告)하야 민족자존(民族自存)의 정권(正權)을 영유(永有)케 하노라.’ 한자(漢子)만을 쓰거나 병기(倂記)를 해도 어렵다. 그런데 풀어쓰면 온통 지당한 말씀들이다. 다른 나라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있는 나라. 백성 스스로 주인이며, 사람은 누구나 신분과 계급의 차이와 차별 없이 동등함을 분명하게 밝힌다는 것. 후세에 길이길이 민족 스스로 존엄한 올바른 권리를 영원히 갖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니, 지금도 그 정신은 온전하고도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원년이며 3.1운동의 민족항쟁의 기치가 드높았던 1919년으로부터 97년이 지난 2016년 7월의 대한민국은 처량하고 애처롭다.

‘평화의 땅’이거나 ‘죽음의 땅을 만드는...’ 등의 원색적 표현이 신문의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등장하고, 주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된 자치단체장이 삭발을 불사하는 극단의 시대. 시쳇말로 웃픈(웃기고도 슬픈)일이 현실로 나타나는 모양새가 참으로 기구하다.

대문은 활짝 열어젖히고 안방 문만은 굳게 걸어 잠그는 떨떠름함이 한반도 사드배치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음은 처량하다. 남북 분단과 휴전, 말 그대로 전쟁을 잠시 쉬고 있는 상태에서 무슨 처지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마는.

서울 한복판 용산이 그렇고, 오산과 평택은 물론 구럼비 너럭바위 제주도 푸른 바다 강정마을이 그랬다. 미군의 장갑차에 치여 차마 꽃 피우지 못한 채 숨진 중학생 효순과 미선의 비극 역시 나라의 독립과 자존을 의심케 하는 비극의 현재진행형이다.

IMF 사태를 불러온 전직 대통령은 그랬다. 머리는 빌려 쓰면 되나 건강을 빌려 쓸 수 없다고. 분단과 대치의, 전쟁마저 잠시 쉬고 있는 나라의 입장에서 힘이 없으면 힘센 나라에 의지할 수 있다는 논리는 이와 비슷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건강하지 않으면 힘은 만들어지지 않는 법. 헬스클럽에서 근육질의 몸을 만드는 것만이 건강을 유지하는 유일한 비결이 아니라 잘 먹고, 잘 쉬면서 좋은 사회적 관계를 만들며, 가끔 몸보신을 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니 북한의 위협에 대해서만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만큼이나 중국과 러시아 등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눈치도 살필 수밖에 없는 처지가 안타까운데, 그나마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건 아닌지 아슬아슬하다.

대문은 활짝 열어젖히고 안방 문은 단속해야 하는 지역 주민들의 처지는 딱하기 그지없다. 무력도발을 겁내면서 당장 의존도가 지극히 높은 중국의 경제적 제재가 우려되는 상황은 곳간을, 부국을 위해 차곡차곡 쌓아야 할 식량을 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기야 나라가 어디 그럴 겨를이 있겠는가. 백년지대계를 세워야 할 교육부 고위 관료가 민중을 개, 돼지로 인식하고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서슴없이 내뱉는 세상이니.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는 마지막 문장으로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라는 물음표로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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