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집 두모악에서
바람의 집 두모악에서
  • 안희자<수필가>
  • 승인 2016.07.1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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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안희자

많이 궁금했었다. 하고많은 섬 중에서 그는 왜 이어도를 꿈꾸었는가. 나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단숨에 날아갔다. 바닷바람을 가르고 찾아간 그곳은 제주도 중산간 마을 삼달리에 있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다.

삼달리는 김영갑의 사진 전시관을 빼놓으면 적막하기 그지없는 시골 마을이다. 한라산의 옛 이름이기도 한 두모악은 폐교였던 삼달분교를 개조하여 문을 열었다. 텅 비어 잡초만 우거졌을 그곳에 마지막 혼을 지펴 올린 김영갑, 그는 제주를 오가며 사진작업을 하던 중 제주에 홀려 필름에 미친 죄로 루게릭이란 병에 걸려 생을 마감한 사진작가다.

지독하게도 빈곤하고 외로웠던 사람, 짧은 생을 사진으로 시작해 파란하게 살다가 사진으로 끝내고 흙으로 돌아갔다.

전시실로 들어서자 그의 작품 앞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오름과 억새」거기엔 그가 찾아 헤맨 이어도가 담겨 있었다. 여인의 젖무덤 같은 능선 아래, 바람에 하얗게 출렁이는 드넓은 억새의 무리를 보는 순간 마음이 홀렸다. 아득했다. 그들은 서로가 몸을 기댄 채 바람에 꺾일 듯 휘어지지 않고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바로 그것이었다. 살아있는 듯한 그 느낌, 황홀했다. 빛과 바람과 찰나의 풍경이 한데 어울려 빚어 놓은 아름다움이 내 앞에 펼쳐졌다. 마치 도공이 백자를 빚듯 렌즈를 통하여 그의 영혼을 불어넣은 것이다. 그는 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를 메고 20년 세월을 길 위에 있었다. 렌즈를 들여다보며 비바람을 맞았고 그가 사랑한 오름에 서서 한겨울에 눈을 맞았다. 같은 오름이지만 사진 속 사계절 오름의 풍경은 변화무쌍한 우리의 삶처럼 시시각각 다른 느낌이어서 그 누구라도 반하게 될 것이다. 그의 외로움을 지켰던 것은 오로지 몸과 영혼을 바쳐 오름에 매달려 사진 찍는 일이었다. 이렇게 이어도라는 꿈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은 것이다.

충남 부여가 고향인 그는 제주도에서 떠돌다 그곳에 묻혔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 그런 그에게 현실은 춥고 허기지고 아팠는데 그는 왜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폐교의 마당에 혼신을 다해 갤러리를 만든 것일까. 자신이 찾아 헤맨 이어도의 꿈을 실현하고 싶은 예술혼 때문이었을까.

나는 갤러리에서 두 시간을 머물며 그의 사진에 푹 빠졌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면서 녹음 우거진 마당에서 사진을 담고 그의 작품이 새겨진 사진엽서를 사 가져왔다.

그즈음 잠 못 드는 밤이면 으레 사진을 펼쳤다. 무시로 내 안에 부는 바람 때문이었다. 영혼이 실타래처럼 엉켜 글을 쓰지 못할 때, 잡힐 듯하면서도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나는 그를 홀린 제주도의 빛 속으로 들어가 그가 사랑한 오름에서 제주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그렇게 비탈진 오름을 허정거리며 기어오르다 보면 바람 속으로 사라진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노라면 아슴아슴 길이 뚫리고 한 가닥의 활자들이 날아들었다.

나는 여기서 한 예술가의 고행을 보았다. 나는 수필을 쓰고 있지만 그토록 치열하게 쓴 적이 있었던가. 나도 그처럼 한 끼니를 굶고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래며 원고지를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바람의 집, 두모악은 영원히 관광객들의 감성을 흔들어 깨울 것이다. 김영갑으로 하여 더욱 아름다운 제주도. 나는 지금 혼으로 빚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치열한 영혼을 더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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