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의 생일(1)
아줌마의 생일(1)
  • 박윤미<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16.07.1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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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미

그녀의 생일이다. ‘기뻐요’도 눌러주고,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도 썼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한듯하여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이틀 만에 전화가 왔다. 하이 톤의 들뜬 목소리와 이어지는 방정맞은 웃음소리가 나를 긴장시킨다. 주위가 민망하여 교무실을 나왔다. 하지를 갓 지난 태양이 이제야 서산을 넘는 시각, 아직도 훤한데 벌써 혀 꼬부라진 소리다. 요즘 생일 축하주 마시러 다니느라 매일 바빴는데 오늘은 집에서 한잔하는 중이라고 한다.

생일을 함께 기뻐해 주는 친구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 안심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묘한 질투도 난다. 나는 이제 야간 근무 시작 직전이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그녀는 정색하여 정갈한 낮은 목소리로 요즘 잘 지내고 있다고, 묻지도 않은 인사말에 답을 한다.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 그거라는 것을 안다는 듯이.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친 겨울이었다. 조실부모한 3남매는 우리 할머니네로 오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내 할아버지의 사촌이었으니 나는 두 오빠에게는 ‘아재’로 그녀에게는 ‘아줌마’로 부르게 되었다. 창백하고 말 없는 그녀가 우리 교실에서 새 친구로 소개되었다.

나는 동무들과 학교 가는 길에도, 학교에서도, 둘이 있을 때도 꼬박꼬박 아줌마라고 불렀다. 친구들이 놀리기도 하였고 미안한 마음도 생기곤 했으나 어른들이 가르쳐준 예법이었기 때문에 잘 지켰다.

할머니는 부드럽고 따스한 분은 아니셨다. 묵묵히 걸레질하는 어린 아줌마를 앙칼지게 혼내는 소리를 들으면 나를 나무라는 소리로 들려 오금이 저렸다.

어느 겨울엔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복도 입구에서 쓰러진 적도 있었다. 몇 개의 마을을 지나 산 중턱까지 한참 걸어야 하는 눈 쌓인 등굣길을 고무신을 신고 왔으니 발이 꽁꽁 얼었던 것이다. 차갑게 언 땅에 발을 내디딜 때마다 쓰러질 듯 기우뚱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내 털 장화를 벗어줄 용기가 없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는 미싱 시다로 서울로 보내졌다. 이때는 돈 버는 아줌마가 부럽기도 하였다.

누구보다 뽀얗고 고운 피부의 환한 얼굴은 완전히 서울 사람이었고 그녀가 입은 옷은 모두 다 멋스럽고 고왔다.

승마 바지 같은 최신 유행의 옷을 입고 선물을 사서 할머니네로 명절을 지내러 왔다. 그리고 매번 선물처럼 경양식집에 가서 돈가스를 사주며 서울 생활 얘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한참 작게 느껴졌다. 이제 그녀에게도 내게도 흐른 긴 시간만큼의 사연이 더 생겼다.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두 해 전 겨울, 함께 아줌마의 부모님 묘에 갔었다. 하얗게 눈 덮인 백색의 공원묘원에는 소리도 잠자는 듯했다.

긴 세월의 풍파가 닿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에 발자국을 내며 비석의 이름들을 여러 개 짚어서 겨우 묘를 찾았다. 돗자리를 깔고 포를 놓고 소주를 한잔 따랐다. 늦둥이 어린 아들에게 몇 가지 이르고 먼저 절을 시키니 추운 날씨에 엉거주춤하면서도 묵묵히 한다. 다음 순으로 아줌마가 술을 다시 한잔 따르고 절을 하고는 차가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고인들에게 이야기하듯 차분히 입을 열었다.

“엄마, 아부지, 어떻게 생겼는지, 전에는 어렴풋이라도 생각났는데 이젠 전혀 모르겠어요.”

그녀가 다섯 살 이전의 엄마, 여덟 살 이전의 아빠를 계속 떠올리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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