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길목에서
여름의 길목에서
  • 김희숙<수필가·원봉초 병설유치원 교사>
  • 승인 2016.07.0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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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인생은 한 번이에요. 최대한 열심히 사는 게 삶에 대한 의무에요.”

가족이나 연인을 위해 희생하는 삶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 이전에 나를 챙겨 나의 삶을 스스로 살라는 메시지가 나를 흔들었다. 난 내 삶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를 조용히 곱씹어 보았다.

제천에서 전화가 왔다. 영화 봤냐고. 아직도 여운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제천 촌에서도 봤는데 영화란 영화는 모조리 보는 네가 어찌 그 영활 못 봤냐고. 꼭 혼자서 보라고. 두 번을 보고도 또 보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인터넷을 검색했다. 상영관이 많지 않았다. 영화관을 여기저기 뒤져 시간을 맞췄다.

오토바이 사고로 느닷없이 전신마비가 된 남자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존엄사를 결정한 후 6개월 남은 시한부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사고 전 누구보다 활발하게 삶을 영위했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가꾸었던 남자다. 그런 남자가 날벼락을 맞듯 바뀐 삶의 그림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자신의 의지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란 얼마나 비참한 것일까?

수족을 전혀 움직일 수 없어 용변 보는 것에서 먹는 것까지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가족은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비록 그가 존엄사를 선택했지만 마음이 변하길, 그래서 어눌한 모습이지만 그대로 살아주길 간절히 기도한다. 가족은 그를 위해 간병인을 들이고 간병인이 아들의 마음을 돌려주길 바란다.

시한부 인생 윌은 간병인과 사랑을 하게 된다. 어쩌면 뻔한 스토리다. 자칫 통속 연애사로 그치기 쉬운 소재였다. 그런데 감독은 영화를 통속적이지 않게 풀어나갔다. 윌은 자신이 선택한 길을 유유히 간다. 사고 전의 자신이 사랑했던 삶과 사고 후 삶 사이에서 숱한 방황의 날들을 보내다 결국은 한 잎 나뭇잎이 되어 떨어진다. 그리고 그녀에게 담담히 말한다. 잘 살라고.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멋진 남자. 삶을 갈무리하고 깔끔하게 죽음을 선택하는 남자. 내게 만약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난 내 삶을 과감하게 놓을 수 있을까? 나 스스로 삶을 살아갈 수 없다 해도 이 삶에 대한 미련의 끈을 놓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리라. 그것은 죽음을 모르기 때문이리라. 모서리는 언제나 돌기 전까지가 두려운 것이니까.

영화를 보는 내내 양파를 다지다 온 것처럼 눈이 따끔거렸다. 영화의 잔상들이 나를 생각에 젖게 한다. 하나 뿐인 내 인생을 낭비하지는 않았는지. 내 몸이 자유로울 때 삶에 대한 의무를 다하리라. 언제 어떻게 내 삶에 다른 물감이 채색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이 될지라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짧지만 강렬한 여름처럼 뜨겁게 살다 간 윌. 몸이 부자유스러운 그가 온 마음을 표정과 눈빛으로 끌어올려 표현하던 모습이 선한다. 한동안 그의 눈빛이 뇌리에서 떠다닐 것이다. 여름이 저만치 손짓하고 있다. 삶은 한 번 뿐이라고, 뜨겁게 살라고, 계절처럼 빠르게 지나간다고 속삭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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