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지식정보문명 유산 … 44년 수장고서 깊은 잠
동·서양 지식정보문명 유산 … 44년 수장고서 깊은 잠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6.07.06 1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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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혁명,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직지를 찾아서

③ 직지, 잠을 깨워라

595년만인 1972년 파리도서전 등장 후 동양문헌실 보관

청주시 한불수교 130주년·직지코리아축제 관련 대여 추진

파리국립도서관, 한국민 직지 반환 여론화 부담 `보이콧'
▲ 파리국립도서관 열람실

# 세계 기록과 정보문명의 발아 `직지'
파리국립도서관 수장고에서 발견돼 1972년 모습을 드러낸 금속활자본 직지는 세계 학자들의 연구가 거듭할수록 가치에 놀라움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세계 기록문명의 선두주자로 알려졌던 독일의 금속활자본 구텐베르크 48행 성서(1455년)보다 78년 앞선 직지의 발견은 그 자체로 세계 기록역사를 뒤집는 일대 사건이었다.

워싱턴 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 BBC 등 세계 언론은 직지를 대서특필하며 인류 역사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러한 평가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세시대 소수 권력자만 공유할 수 있었던 지식과 각종 정보가 인쇄술 발달로 서민층까지 확산돼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산업혁명, 시민혁명의 근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 학자들의 활자연구가 계속되면서 서양의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탄생에 고려 금속인쇄기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직지’가 동·서양의 활자 루트를 통해 지식정보 문명에 새로운 창구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세계 기록과 정보 문명의 발아가 된 직지는 그러나 아직도 파리국립도서관의 수장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595년 침묵을 깨고 1972년 파리 도서전에 등장했지만 행사가 끝난 후 동양문헌실로 돌아간 직지는 다시 44년 동안 긴 잠을 자고 있다.

▲ (왼쪽 위) 청주시 관계자가 직지 원본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오른쪽 위)파리국립도서관에 보관된 직지 하권.(아래)국내 반환된 외규장각 의궤

# 직지 원본을 찾아 파리국립도서관을 가다
파리국립도서관 수장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직지의 소식은 여러모로 안타깝게 하고 있다. 세계가 인정한 대한민국의 위대한 유산임에도 프랑스 소유이다 보니 일반인들은 구경조차 하기 어렵다.

박병선 박사에 의해 발견된 당시처럼 직지는 여전히 동양문헌실 수장고에 보관돼 전문가 외에는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직지의 가치와 높은 관심과는 달리 꼭꼭 숨어버린 직지를 깨우기 위해 본 기자는 지난달 15일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직지 원본을 소장하고 있는 파리국립도서관을 탐방하기 위해서였다.

‘직지’ 원본을 직접 보고 세계문화유산 직지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이번 취재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5월부터 파리국립도서관 담당자에게 요청한 ‘직지’ 원본 촬영과 인터뷰 회신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특히 외규장각 의궤를 반환한 경험이 있는 프랑스에서는 ‘직지’ 반환문제로 불거질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취재 허가가 쉽지 않았다.

직지 원본 취재는 청주시가 오는 9월 2016직지코리아 축제기간 중 직지원본 임대를 추진하겠다는 발표와 올해가 한·불 수교 130주년이라는 점만이 약간의 기대치와 가능성을 갖게 했을 뿐이다.

그렇게 도착한 파리는 유럽축구 열풍으로 거리마다 축제분위기였다. 세계관광도시라는 명성에 맞게 화려한 도시 색채는 축제 속에 더욱 빛이 났다.

하지만 직지 취재를 요청한 파리국립도서관에서 보내온 메일은 “담당자가 시간이 없다. 전문 연구자들의 특별한 요구가 있을 때만 열람이 가능하다”는 회신이었다. 이는 여러 차례 국내 언론사에서 취재를 요청한 것과 같은 태도였다.

직지 원본 대여를 추진하고 있는 2016직지코리아의 이승철 박사는 “직지열람을 허가하지 않은 이유는 담당자가 시간이 없다는 이유였지만 아무래도 언론에 직지가 보도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 것 같다”며 “특히 최근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사업이나 직지코리아 국제 페스티벌 관련 직지 대여에 대한 한국 측의 요청이 많아 언론에 기사화되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또 “특히 직지가 한국에 대여되었을 때 직지반환에 대한 한국민의 예기치않은 반응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면서 “직지 한국 대여전시에 대한 문제는 양국관계가 좀 더 성숙되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직지 원본에 대한 촬영과 취재는 불발되었지만 파리 중심가에 있는 파리국립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은 중세건물을 그대로 활용해 웅장하면서도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1368년에 지어져 시민혁명 이후 1793년 세계 최초로 민간 도서관으로 개방한 곳이고 보면 ‘직지’의 소장도 자부심이 느껴졌다.

도서관은 한국의 일반 도서관과 달랐다. 전문가만 사용할 수 있는 곳과 일반열람실이 구분돼 있었고, 특별 도서관 이용은 비용을 내야 했다. 이용자 중심에 있어서도 시민 다수가 아니라 꼭 필요한 사람만 이용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이었다.

직지가 소장되어 있는 동양문헌실은 확장 공사 중이었다. 좁은 문 뒤로 직지를 보관하고 있는 수장고가 있을 것을 생각하니 거리가 좁혀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둑한 수장고에서 직지를 찾아낸 박병선 박사는 “쉬는 시간도 없이 장서를 뒤져보던 어느 날 도서관 깊은 곳에서 먼지에 뒤덮인 책을 발견했다. 책은 중국 고서로 분류된 채 어지럽게 분류가 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직지였다. 상권은 찾을 수 없었고, 하권은 첫 장이 찢겨져 있었던 상태였다”고 했던 회고담이 문득 가슴에 와 닿았다.

직지와 파리, 그리고 청주의 꿈은 이대로 시공을 초월한 채 먼 타국에서 배회하고 있는 듯했다.

/연지민기자

yeaon@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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