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네 이웃
한 동네 이웃
  • 안상숲<생거진천휴양림 숲해설가>
  • 승인 2016.07.05 18: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 안상숲<생거진천휴양림 숲해설가>

모처럼 숲속에 비가 내렸습니다.

모두 비를 기다렸지요. 제가 있는 숲에는 옹달샘이 있어 사시사철 마르지 않지만 모두의 목을 축이기는 어려웠었거든요. 밤새 내린 비에 숲은 촉촉해졌습니다.

물안개에 쌓여 미몽에 빠진 듯한 산이 드디어 하늘과의 경계를 지웠습니다.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가 산인지  물기를 머금은 공기에서 푸릇한 물내가 나요.

한바탕 광시곡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춘 듯 비온 뒤 숲은 시름과 슬픔, 미움들 다 씻어낸 듯 고요합니다. 잎자루가 길어 햇살만 닿아도 흔들리던 자작나무도 정물이 되었어요.

비가 온 숲은 정지된 화면 같아요. 그래서 숲 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마치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이 들어요. 저만 움직이는 듯해요. 천천히 안단테로 걸어요.

숲은 깊은 침묵, 묵언 중. 사방이 고요하니 명랑해진 산새 소리만 돋을새김한 것 같아요.

빗물은 숲을 다 적시고도 남아 물길 따라 내려갑니다.

물은 가는 길 어디냐고 묻지 않아요. 물은 아래로만 흘러 백곡천을 지나 미호천에 합류해 금강까지 닿겠지요.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지요. 산은 산으로 이어져 산줄기가 되고 물은 물로 이어져 강줄기가 됩니다. 모두 그 산줄기와 강줄기에 매달려 살아가지요.

옹달샘에서 시작된 물이 이어져 강줄기가 되었으니 우리 모두는 한솥밥 먹는 가족은 아닐지라도 한줄기의 물을 먹고사는 건 틀림없는 듯합니다. 그러니 같은 물을 쓰는 한 동(洞)네 이웃입니다. 洞이란 한자는 같은 물이라는 뜻이잖아요.

이곳 옹달샘 물은 개구리도 먹고 토끼도 먹고 멧돼지며 온갖 새들도 먹어요. 그러니 이들도 한 동네 이웃입니다. 물속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날도래, 강도래, 옆새우, 그리고 기타 물고기 여러분. 그들도 한 동네 이웃이지요.

그러고 보니 하늘과 땅과 물에 사는 모든 것들이 모두 한 물을 먹고사는 한 동네 이웃이네요. 그 물을 먹는 도시의 많은 사람까지 우리들 모두가 한 동네 이웃이군요. 그런 생각을 하니 뿌듯해졌어요. 우리가 사랑하며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은 듯해서요.

모든 생명은 한 점에서 시작돼요. 식물의 씨앗이나 동물의 알은 점이잖아요. 그 점들이 이어져 선이 되고 면이 되고, 하나의 개체가 되는 거지요. 그런 이어짐이 숲을 이루는 근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체는 다른 개체들과 이어져 커다란 하나의 숲을 이루지요. 산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산줄기가 되고 물이 멈추지 않고 이어져 강줄기가 된 것처럼 그렇게 이어져 숲인 거지요.

혹 이어지지 못하고 끊긴 건 없나요?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잊었나요? 혹 끊겼다면 어떻게 이어야 할까요?

물을 따라 마음이 흘러 거기 도시의 강까지 이르다 보니 여러 생각이 들어요. 산줄기를 자르고 강줄기를 끊는 사람이 하는 일이 살자고 하는 일이 아니라 죽자고 하는 일 같아서 자꾸 안타까워서요.

햇살이 내리비치자 단번에 안개를 물린 숲 속은 후두둑 고요를 털어냅니다. 그러자 계곡물 소리가 씩씩해졌어요. 새들 소리도 바람이 풀잎을 간질이는 소리도 소리를 되찾은 숲은 다시 생기로 넘쳐요. 제 걸음도 비바체, 아주 빨라졌어요.

숲의 곳곳에 닿은 햇살은 커다란 현악기 같아요. 바람이 그 팽팽해진 현을 건들며 쨍쨍 햇살을 연주합니다. 숲 속 음악회가 시작되었어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