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고리 소녀
진주 귀고리 소녀
  • 이지수<청주 중앙초>
  • 승인 2016.07.0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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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이지수

베르메르의 몇 안 되는 작품 중 북구의 모나리자라고 칭송된다는 ‘진주 귀고리 소녀’. 이 작품은 이 소설의 제목이자 책표지이다. 그림과 소설 속 내용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는데, 화가-작품-소설의 내용이 별개가 아닌 진짜 있었던 일인 양 사실처럼 다가왔다.

감상은 독자의 몫이지만 난 베르메르보다 그의 모델이 된 작품 속 ‘소녀’가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이지 싶다. 분명한 건 베르메르가 소녀의 그림을 그릴 때 소녀와의 작은 스킨십 묘사에서는 나도 소녀인 듯 살짝 떨려왔다는 것이다.

소설 속 베르메르는 흐릿한 이미지로 그려지는데 그 이유는 소녀의 시선 위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녀의 설렘은 학창시절 좋아했던 선생님을 바라보는 듯한 ‘멀고도 먼 당신’과 같은 떨림이다.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하고 싶지 않은 건 나이가 든 아줌마인 내 감상일 뿐이다.

이 장면은 화가 베르메르 살아생전의 모습도 짐작해 볼 수 있게 해줬다. 베르메르라면 소설 속에서처럼 행동하지 않았을까?

요즘은 소녀의 순수함을 해치는 미숙한 어른이 너무도 많은데, 소녀를 그냥 소녀로, 작품 속 모델로만 대하며 작품에만 매진하는 그에게 경외심이 흘러나왔다. 사후 고작 35점의 작품만을 남긴 그의 결벽에 가까운 완벽함이 그걸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의 모태가 된 작품 - ‘진주 귀고리 소녀’ 그림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노란빛과 파란빛이 어우러진 두건부터 순수한 소녀와 그 순수의 집약체처럼 보이는 진주 귀고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배경이 검은색이었던 터에 소녀의 얼굴과 머릿수건이 이 작품을 매혹적으로 보이게 하는 장치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게 이 진주 귀고리 소녀는 한없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좋은 것은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의 새로운 발견인 듯하다. 이전의 ‘진주 귀고리 소녀’는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아름다움’이었는데 경험치를 얹어서 보는 지금은 그림 속 소녀가 살아있는 듯 그 심리를 엿보게 된다.

소녀는 무엇을 하다가 저리 뒤를 돌아다 본 것일까? 소녀의 행색과는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진주 귀고리는 어떻게 달게 된 것일까? 이런 몹쓸 호기심들로 소녀의 눈동자와 진주 귀고리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동그란 눈매에 다소 슬퍼 보이기까지 하는 눈동자와 진주 귀고리는 마냥 은은한 빛을 반사하기만 할 뿐, 어떤 형체도 단서도 내보이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 트레이시 슈발리에도 나와 같은 호기심으로 이 소설을 탄생시켰다. 나의 호기심이 저급한 것이 아니라는 말 같아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책의 뒤편에는 작가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는데 “진주 귀고리 소녀는 실화입니까? 어느 정도까지 사실에 바탕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작가는 말한다. - “실화는 아닙니다.” 왠지 서운해진다. 하지만 그가 남긴 몇 안 되는 작품들과 남아있는 그와 관련된 법적 문서들을 가지고 어느 정도 신빙성 있게 그려냈다니 위안이 된다. 하지만 그림 속 소녀의 정체는 아직도 누군지 정확히 밝혀진 게 없다니 아쉬우면서도 그 덕분에 이런 멋진 소설이 탄생할 수 있었으니 한편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작가의 필력이란 도대체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사실인지 그걸 가능하게 하는 힘은 또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매번 책을 대할 때마다 경이롭다. 정말이지 이런 책을 가장 가까이에서 대할 수 있는 나는 정말 세상 최고의 직업을 가진 행운아라는 자축을 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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