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비자 홀대받는 이유
국내 소비자 홀대받는 이유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6.07.0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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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유럽 1위, 세계 2위의 자동차그룹 폴크스바겐. 포르셰,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 쟁쟁한 계열사들을 거느린 이 명품 자동차 회사가 지난해부터 배출가스와 연비를 조작한 혐의로 전세계 소비자들의 눈총을 받고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비자들에게 사기를 친 파렴치보다 피해자에 대한 폴크스바겐의 오만불손이 더 논란이 되고있다. 폴크스바겐은 미국의 피해 고객들에게는 153억달러(17조9000억원)를 보상하기로 법원과 합의했다. 문제가 된 디젤엔진 차를 구매한 47만5000명 전원이 배상 대상이다. 그런데 같은 피해를 본 한국 소비자들은 보상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같은 방식으로 연비가 조작된 같은 차량을 구매했는데도 말이다.

검찰 수사를 보면 폴크스바겐이 우리나라에서 저지른 행태는 특히 충격적이다. 디젤차뿐 아니라 휘발유차도 국내 배출가스 기준을 맞추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조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의 휘발유 차량이 2014년 정부 인증에서 탈락하자 독일 본사의 지시를 받아 수치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각종 시험성적서 등 우리 정부에 제출한 서류 중 139건을 조작한 혐의도 받는다. 그런데도 미국에서는 바짝 꼬리를 내리고 우리나라에서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워 소비자와 정부를 우롱하고 있다.

다국적 가구기업 이케아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8조원을 들여 어린이용 서랍장인 ‘말름’의 리콜에 나섰다. 이 서랍장이 넘어져 어린이 6명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리콜은커녕 해당 제품을 그대로 팔고있다고 한다. 벽에 고정하면 안전하다는 주장만 되풀이 한다. 소비자원의 리콜 권고에도 귀를 막고있다.

외국 기업의 오만을 초래한 1차적 원인은 정부의 허술한 법체계와 유약한 대응이다. 환경부는 지난 2011년에도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실을 적발했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지금도 과징금 141억원을 부과하고 리콜 권고를 되풀이 할 뿐이다. 부실한 리콜계획서를 세 차례나 받았지만 반려만 거듭하며 시간을 벌어줄 뿐 후속조치가 없다. 대기환경보전법 50조 7항을 동원하면 폴크스바겐에 강제 자동차 교체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 휘발유차까지 조작 혐의를 받는만큼 판매하는 전 차종으로 검사를 확대해 회사를 압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이 캥기는지 팔장만 끼고 검찰만 바라보는 형국이다.

폴크스바겐의 대한민국 소비자 홀대는 가습기 살균제 ‘옥시’ 사태를 돌아보게 한다. 환경부는 2011년 가습기 살균제가 소비자 사망 원인으로 밝혀졌는데도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해 피해를 키웠다.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다며 추가 조사를 기피하는 등 원인 규명은 뒷전이고 사안의 확대를 막기에 급급했다. 가습기 살균제가 폐 질환뿐 아니라 다른 질환을 초래한다는 주장도 모른 척 했다. 어찌보면 옥시의 가장 강력한 우군이었다. 그런데도 2013년 취임해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에 나와 추궁을 받을 때도 끝내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는 거부했다. 피해자와 기업간의 문제라고 피해갔고 피해자들을 만나 위로라고 했었느냐는 질문에는 만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소비자에 대한 의무보다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는 점에서 환경부와 폴크스바겐의 태도가 다를 게 없다. 국내 피해 소비자들에겐 비정하기 짝이없는 환경부가 폴크스바겐에는 관대할 정도로 무력한 모습에서 외국기업들이 국내 소비자들을 얕잡아보는 이유가 짐작된다. 미국 정부는 폴크스바겐 문제가 터지자마자 ‘묵과할 수 없는 행태’라고 강력하게 비난하며 폴크스바겐을 궁지로 몰았고 법원은 소송이 길어질 경우 보상뿐 아니라 형사상 벌금 등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합의를 압박했다. 자국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소비자들을 외국 기업이 존중할 리 없다. 환경부 대신 칼자루를 잡은 검찰이 폴크스바겐을 응징하고 우리 소비자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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