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돌리기와 음모론
말 돌리기와 음모론
  • 정현수<칼럼니스트>
  • 승인 2016.06.30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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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정현수<칼럼니스트>

말 돌리기는 의도적이다. 어떤 것을 밝히기가 몹시 껄끄럽고 난처하거나 그런 상황이 예상될 때 전혀 엉뚱한 얘기를 꺼내 대화 주제를 바꾸는 화술이다. 불순한 의도로 너무 뻔뻔하게 말을 돌리면 상대는 불쾌감을 느낀다. 진실에서 배척당하고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고 무언가 감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친교적인 대화에서 상대는 내가 돌린 말머리를 금세 알아차리지만 굳이 이유를 캐묻거나 따지지는 않는다. 나의 불편함을 고려해 모른 척하는 것이다.

권력의 말 돌리기도 이와 비슷하다. 권력이 감추고 싶은 게 있을 때, 이목을 끌 만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퍼뜨려 말머리를 돌린다는 게 최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음모론이다.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감출 게 많을수록 권력은 한층 대담하고 뻔뻔하게 말을 돌린다고 한다. 권력의 권위를 견제하거나 진실을 파헤칠 의지가 없는 언론은 권력이 돌려놓은 말에 색을 덧칠해 퍼뜨린다. 말 돌리기의 전통적인 소재는 유명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사생활이었다.

음모론을 제기한 사람들은 법원이 옥시 코리아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과 전기와 가스를 민영화하겠다는 발표를 정부가 감추려 한다고 의심한다. 또 방위사업청이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KF-16 개량 사업에 부실 업체를 선정해 천억 원 이상 예산 손실을 입은 것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침몰한 세월호에 400톤의 철근이 실려 있었다는 주장도 의혹투성이다. 이에 때맞춰 연예인들의 스캔들이 연이어 보도되면서 말 돌리기 의혹이 증폭되었다.

위에서 열거한, 정부가 감춘다고 의심받는 것들은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별다른 국민적 비판이나 저항 없이 서서히 잊히고 있다. 음모론을 꺼낸 이들은 이것이 아이돌 출신 가수 박 모 씨의 성추문을 비중 있게 보도한 때문이라고 본다. 박 모 씨의 이름은 한동안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랐고 대중들은 곱상한 남자 얼굴 뒤에 도사린 변태적 성행위에 경악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추스르고 한물간 가수의 성적 취향을 왜 알아야 하는지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박 모 씨에 대한 보도가 권력의 의도된 말 돌리기가 아닌지 의심했고 음모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곧이어 영화감독 홍 모 씨와 배우 김 모 씨의 불륜설이 불거졌다. 이것 또한 음모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은 간통죄가 폐지되어 형법으로는 처벌조차 하지 않는 개인의 사랑을 언론이 연일 비중 있게 보도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다. 하루 평균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지만 언론은 그들의 개인적 고통에 침묵해 왔다. 그랬던 언론이 느닷없이 개인의 사적 영역 깊숙이 개입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개인의 사랑을 일일이 들춰내 비난하기보다 권력의 감시자로서 역할을 다했는지 언론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음모론의 시대」를 쓴 전상진 교수는 이런 음모론이 사회가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진단했다. 또 지식인과 언론이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 기능을 상실하면 국민이 음모론을 만든다고 했다. 작금의 음모론이 한낱 의혹제기에 불과할는지 모른다. 공교롭게도 보도 시기가 겹쳤을 수도 있다. 공인의 사생활 까발리기가 공익에 목적이 있었다고 우길 수도 있겠지만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말 돌리기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음모론은 정부와 언론이 국민의 신임을 잃었음을 알려주는 정황증거다. 음모론을 가볍게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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