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대하여
시간에 대하여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 승인 2016.06.29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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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6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벌써 한 해의 절반을 보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랍니다. 시간이 빨리 간 건지, 시간을 빨리 보낸 건지 헷갈립니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준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시간일 겁니다. 남자든 여자든, 강자든 약자든, 부자든 빈자든, 잘났건 못났건 다 같은 시간을 주었습니다. 단지 시간을 알차게 쓴 자와 허투루 쓴 자가 있을 뿐입니다.

시간을 알차게 쓴 이와 허투루 쓴 이의 인생성적표는 천양지차입니다. 시간을 좀 더 많이 누린 자와 적게 누린 자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남들보다 좀 더 오래 산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장수했다 하여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단명했다 하여 실패한 삶이라고, 불행한 삶이라고 단정 지울 수도 없습니다.

오래 살고 못 살고가 인생의 성패와 행불을 가르는 척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류에 회자하는 위인 중에는 단명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불꽃처럼 살다가 간 그들의 삶에 진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을 뿐 그들의 삶은 거룩하고 위대했습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꿈이 있고 설렘이 있고, 열정이 있으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삶이 곧 축복입니다. 설렘도 없고 열정도 없고 꿈조차 없으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삶이 곧 저주입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습니다. 생로병사의 인생길을 거스를 수 없으니까요. 불로초를 먹은 진시황도,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스티브잡스도, 세기의 주먹 무하마드 알리도, 죽을병을 고치던 명의들도 다 그렇게 갔습니다.

새무엘 얼만은 ‘청춘’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청춘은 때때로 이십 세의 청년보다/ 육십 세의 노인에게 존재한다/ 단지 연령의 숫자로 늙었다고 말하지 마라/ 우리는 황폐해진 우리의 이상에 의해 늙게 되는 것이다/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열정을 버리는 것은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

그렇습니다.

결코 나이의 많고 적음이 청춘의 잣대가 될 수 없습니다.

나이가 청년과 노인을 갈라놓는 건 분명하지만 이상이 있고 열정이 있으면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청춘입니다. 이상과 열정이 없으면 젊어도 청춘이 아닙니다.

뜨거운 열정은 인생의 용광로입니다. 용광로가 철광석을 녹여 강철을 만들어 내듯 열정은 꿈과 이상을 실현케 합니다. 문명의 이기도, 위대한 예술도, 그 어떤 성공과 성취도 다 열정의 소산입니다. 아니 분초를 아껴 쓴 시간의 결과물입니다.

아무튼 시간은 머물지 않고 쉼 없이 갑니다. 해가 바뀌었나 했는데 어느새 반년이 훌쩍 지나가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라는 노랫말처럼 시간은 멈춤이 없습니다.

대신 조물주는 인간에게 추억이라는 시간의 저장고를 주었습니다.

지난 시간은 저마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합니다.

아름다운 추억뿐만 아니라 실패와 좌절의 추억도 인생의 자양분이 됩니다. 그러므로 추억은 삶의 자산이며 자신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대중가요가 노·장층의 마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머리 희끗희끗한 동창들이 모이면 약속이나 한 듯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를 열창하며 시간을 되돌리려 합니다.

몰염치가 아닙니다. 사랑의 열정이 있으면 언제든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이니까요.

시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그대도 지금 이 순간을 허락해주신 조물주에게 감사하며 곱게 익어가기 바랍니다.

목숨 같은 시간이 저만치 가고 있습니다.

 

/시인·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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