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와 상상의 공동체
브렉시트와 상상의 공동체
  • 정규호 <문화기획자 ·칼럼리스트>
  • 승인 2016.06.2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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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기가 막힌 일이다.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을 외치는 청년들의 간절함과 올해 우리나라 예산의 7.7배, 국내총생산(GDP)의 2배 가까운 3000조원을 단 하루 만에 증발시키는 일이 동시에 벌어지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직접민주주의의 대표적 형태인 국민투표를 통해 선택한 영국인들의 유럽연합(EU)탈퇴 후유증이 심각하다. 아니, 혼란스럽다.

당장 영국에서는 노년층과 젊은이들 사이의 갈등이 세대간의 분쟁이 우려될 만큼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는 물론 심지어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 런던조차 따로 독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영국, 그 그레이트브리튼의 위대한 시대가 분열 또는 해체될 위기에 몰리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에 대해 ‘세계화가 야기하는 계속되는 변화와 도전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는 표현으로 세계화의 역류 현상을 인정했다.

통합 대신 고립을 선택한 영국인들의 고집(실제로 영국은 EU에 가입한 이후에도 유로화 대신 파운드화를 계속 사용해 왔다)에는 유럽을 흔들고 있는 난민과 이민의 홍수에 대한 지나친 피해의식이 우선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극단적 우경화로 치닫는 선동적 포퓰리즘의 극성을 원인으로 진단할 수도 있겠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브렉시트 쇼크의 원인을 시시콜콜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다만 이로 인해 세계의 경제와 정치질서의 불확실함이 커지면서 당장 우리 생활경제 역시 심각한 위기에 놓이게 됐음을 주목해야 한다.

최저임금 1만원의 절규는 현상이다. 세계 증시에서 단 하루 만에 물경 3000조원이 휴지조각이 됐음은 상상이다. 최저임금 1만원은 피눈물 나는 노동의 가치이고, 3000조원은 가난한 노동의 가치 상실을 탄식하게 하는 허구의 금융 중심 자본주의이다.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극단적 소득 불균형과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과 직업 불안정은 이미 전 세계 공통의 문제가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도 한 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구호를 외친 적이 있다. 그러나 ‘가장 한국적인 것은 그냥 한국적인 것’일 뿐이다.

국제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은 그의 책 <상상의 공동체>를 통해 ‘민족은 본래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로 규정한 바 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상상의 질서는 언제나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화에 기반하고 있고, 신화는 사람들이 신봉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상상의 질서를 보호하려면 지속적이고 활발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런 노력 중 일부는 폭력과 강요의 형태를 띤다”고 경고한다.

8시간의 시차와 11시간의 비행이 필요한 만큼 거리가 떨어진 나라의 국민투표지만 우리와 먼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브렉시트의 재채기가 우리나라에 독감으로 고스란히 전이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피땀 어린 노동의 소중함이거나, ‘돈 놓고 돈 먹기’나 다름없는 금융자본에 대한 경고가 될 것인가. 극소수의 기존질서에 의해 경제, 정치가 지배되는 세상의 기존 질서 대한 ‘탈중심’의 움직임은 어쩌면 우리의 4.13 국회의원 선거 표심에서 먼저 예고된 것일 수도 있다.

함께 일하며 더불어 나누는 세상. 사람은 ‘상상의 공동체’보다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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