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기
산딸기
  • 전현주<수필가>
  • 승인 2016.06.2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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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전현주

그곳에 산딸기가 많다는 정보는 사흘 전에 입수되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옆집 언니가 상기된 얼굴로 찾아와 나에게만 살짝 그 사실을 알렸다. 산딸기 군락 주변에는 오디와 개똥쑥도 지천이라 했다. 게다가 그곳은 사람들의 왕래가 뜸해서 아무 때나 가기만 하면 원하는 만큼 따올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우선 날을 잡았다. 아이들 학교 행사가 있는 다음날과 비가 온다는 그 다음 날을 피하고 보니 자연스레 오늘이 거사일로 낙점되었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보안유지다. 어찌어찌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그곳의 산딸기는 남아나지 않을 게 뻔하다. 이른 봄부터 온갖 산나물을 뜯어 나르는 이웃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던 차였다. 이름 모를 산자락에 삶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은 채 모처럼의 여유를 누려보고 싶었다.

옆집 언니는 짙은 선글라스에 화려한 스카프를 매고 나타났다. 미모의 스파이 마타 하리 같았다. 마타 하리는 양손에 김치통을 들고 있었다. 시골 아낙네 차림으로 변장한 나는 언니 것보다 더 큰 통으로 꺼내 들었다. 산딸기와 오디로 배를 채워보자는 언니의 말에 도시락은 생략했다.

오랜만에 보는 언니의 밝게 웃는 모습이 좋았다. 언니는 지난해부터 연이어 닥쳐온 힘겨운 일들을 묵묵히 견뎌내는 중이다. 더군다나 몇 달 전부터는 구순을 넘긴 친정어머니까지 모시게 되었고 요즘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과 요양원을 오가며 동분서주했다.

산길로 접어들고도 또 한참을 굽이굽이 달려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언니가 실습을 다녔다던 요양원은 그 자리에선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갓길에 주차하는 동안 언니는 먼저 차에서 내려 현장을 확인했다. 이리저리 풀숲을 살펴보던 언니는 할 말을 잃은 듯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산딸기가 사라졌다고 했다. 그 많던 딸기가 전혀 안 보인단다. 둘이 함께 그 근처를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산딸기는 없었다. 믿기지 않았다. 그나마 나는 덜 했다. 딸기를 직접 봐 두었던 언니는 얼이 다 빠져나간 표정이었다. 나는 ‘푹’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언니도 금방 울어 버릴 것 같은 얼굴로 웃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망연자실해 있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참을 그렇게 깔깔대고 웃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마을사람으로부터 엊그제 웬 여자들이 몰려와 이 일대를 휩쓸고 지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언니는 그제야 산딸기를 함께 발견했던 몇몇 실습동기생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이곳을 훑고 간 후에 비까지 내렸으니 산딸기가 없는 게 당연했다.

차를 돌리기 위해 올라간 산길 끝에서 요양원 건물과 맞닥뜨렸다. 치매 노인과 환자들이 머물고 있다는 그 곳은 산 속에 있으리라고는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규모가 컸다. 요양보호사의 손에 이끌려 나와 해바라기를 하던 몇몇 노인들이 흐린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오지 않을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늦은 밤 주방 한 구석에 던져두었던 김치통을 치우려다 보니 짓무른 산딸기 네 개가 들어있다. 그마저 비우고 돌아서는데 마음 한자락이 헛헛하다. 오늘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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