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베짱이
개미와 베짱이
  • 이영숙<시인>
  • 승인 2016.06.26 18: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엿보기
▲ 이영숙

물소리 들리고 뻐꾸기 소리 한적한 곳에 돗자리를 펴고 쉼에 들었다. 속리산 말티재 계곡은 명상하기 좋은 곳이다. 물의 파장 있는 곳에 음이온이 방출한다는 이유로 시간이 나면 계곡을 찾는다. 음이온은 각종 호르몬을 촉진시켜 긴장된 자율신경계를 이완시키고 피로감을 해소하여 정서안정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산성화된 혈액을 중화시켜 약 알칼리화시킴으로 각종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니 운동량이 많지 않은 내겐 가장 쉬운 힐링법이다.

텀블러에 넣고 우린 쑥차를 마시며 물소리를 듣노라니 이상향이 따로 없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 따라 나직이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흐른다.

사그락 사그락 나뭇잎을 옮기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개미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영치기 영차, 어디를 향해 바삐 움직이는 것일까? 이어지는 줄을 좇으니 벚나무 고목이다. 집짓기 좋은 여름날, 개미는 부지런히 일하는 중이고 놀기 좋은 여름날, 베짱이는 소풍 중인지 찔 찔 베짱을 대신하는 검은등뻐꾸기만이 이따금 ‘홀딱 벗고’를 반복하며 짓궂게 노래한다.

요즘 개미와 베짱이를 평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우리 때는 개미처럼 일 잘하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는데 오늘날 신세대는 일만 하는 개미는 어리석다고 평가한다. 물론 놀기만 하는 베짱이도 마찬가지다. 일만 하고 쉴 줄 모르는 개미와 놀기만 하고 일할 줄 모르는 베짱이 둘 다 문제라는 것이다. 그나마 베짱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사니 개미보다 낫다는 평가이다.

새로 꾸민 일본판 개미는 과로하여 죽고 소련판 개미는 동무와 나눠서 굶어 죽고 미국판 개미는 냉정하게 등 돌린 결과 각자의 재능을 계발하여 양쪽 모두 잘사는 것으로 변형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경제체제 방식을 빗댄 풍자지만 시대를 따라 진리를 평가하는 방식도 사뭇 다르다. 주변에도 일밖에 모르고 휴식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여 좌불안석 못 하는 심각한 일 중독자들이다. 평생 하늘 한 번 못보고 일만 하던 개미는 그렇게 모은 돈을 일하느라 다친 허리에 다시 쓰면서 아픈 노년을 보낸다면 한번 사는 인생이 슬프지 않은가.

나는 개미인가, 베짱이인가?

이따금 시간을 내어 풍광 좋은 곳에 돗자리를 깔고 바람 소리, 물소리, 새소리를 감상하며 낭만을 즐길 줄 아니 ‘영치기 영차’와 ‘찌릉찌릉 베짱’의 중간 정도는 될 것이다. 자기 영혼의 재산을 증식하는 일에 시간을 낼 줄 아는 사람은 참 휴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월든의 소로우처럼 숲 속에서 독서하며 휴식하는 시간을 자주 마련한다.

초록으로 병풍 두른 여름은 온 세상이 신혼이다. 바람이 넘겨 놓고 간 유종인의 시 ‘오늘은 내가 나에게 술 사주고 싶은’구절이 마음에 닿는다. 가끔은 자신을 위한 식사 자리를 마련하는 일도 의미 있는 일이다. 개미처럼 일하고 베짱이처럼 기분 좋게 쓰는 일, 그런 자리는 초대받는 상대도 부담이 없어서 기분 좋을 것이다.

휴일에도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달리고 있을 벗들을 위해 카톡을 넣고 답을 기다린다.

“친구야, 오늘은 내가 나에게 술 사주고 싶은 날인데 시간 되면 빈 잔 들고 올 수 있겠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