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내다
길을 내다
  • 정명숙<수필가>
  • 승인 2016.06.23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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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정명숙

새소리가 잠에서 끌어낸다. 새소리는 맑고 때로는 소란스럽다. 아직 어둠이 앉아있는 숲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길을 내며 소리를 높이고 있다. 직선과 곡선의 길이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흔적 없는 길에 머물던 눈길을 거두고 집을 나섰다.

산길을 내려와 농로를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따가운 햇볕이 쏟아진다. 요즘은 농로도 흙길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모두 시멘트 포장이다. 나는 포장된 길 위에서 곡선으로 나있는 많은 길을 발견한다. 햇볕에 반짝이는 은빛의 길은 폭이 좁은 농로의 중간에서 모두 끊어져있다. 짧게 끝난 미완의 길 끝에는 새끼달팽이의 죽음이 놓여 있고 조금 더 긴 길에는 어른달팽이가 죽어 있거나 살아있어도 기진맥진한 채 오도가고 못한 채 멈춰서 있다. 몸속의 점액질이 모두 소진된 것이다. 나선형의 껍데기 위에 가로무늬만 보인 채 납작 엎드려 있는 달팽이는 죽어있는 것들이다.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시멘트길 위로 기어 나와 생을 마감하는 것일까. 암수한몸이라 그리움이 사무쳐 죽음을 무릅쓰고 험난한 길을 나섰을 리는 없을 터다. 아마도 수풀속 생활이 답답해 한밤중 이슬 내린 길을 나섰다가 아침 햇살이 내리자 이슬과 함께 그들도 말라 갔지 싶다. 어쩌면 달팽이는 이슬 내려 촉촉한 그 길이 가장 좋을 것 같은 축제의 길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길을 잃고 멈춰선 채 죽음의 문턱 앞에 있는 달팽이를 살며시 수풀 속에 내려놓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나는 과연 잘 가고 있는 걸까.

빛나는 길 위에서 환하게 웃는 사람이 부럽던 시절이 있었다. 내면을 들여다 보면 그들에게도 고통이 켜켜이 쌓여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나만 길을 잘못 들었다고 자책하고 혼란스러워 했었다. 절망의 쓰디쓴 시간을 견디며 칼을 갈아도 가지 못한 길 쪽으로 눈이 자꾸 갔다. 목마른 길에 서 있는 나를 누군가 내 영혼이 아름다워지고 풍요로워지는 길로 데려다 줬으면 했다. 갈 곳을 잃고 멈춰선 달팽이를 습도 가득한 수풀로 되돌려 보내듯이 말이다. 생각해 보니 그 것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아니었다. 나는 달팽이가 아니라서 가고 있는 길에서 스스로 나만의 길을 내야 했다.

나만의 길을 찾는 일이 만만한 일은 아니다. 인생이란 여행과 같아서 길 위에서 가끔은 알 수 없고 가보지 않은 길을 걸을 때도 있을 터다. 이제 나는 나만의 길을 흔들리지 않고 걸어간다. 결코 넓거나 평탄하지 않다. 요즘은 한걸음 떼기가 몹시 힘들기도 하다. 이국에서 힘겹게 투병하는 작은사위와의 이별을 앞두고 나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은 모두가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뜨거운 햇볕아래서 시멘트길 위에 몸속의 점액질로 은빛 길을 내며 죽어가던 달팽이의 고통만큼 크다. 그래도 길섶에 서서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고 꼭 안아주는 이들이 많다. 삶을 지탱해주는 사랑의 힘이다.

길 위에 길을 내는 일, 지난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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