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부의 경계에서
터부의 경계에서
  •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6.06.23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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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김경순

‘여름이 좋은 건 어딘가에 시원함이 있기 때문이다.’

짤막한 광고 문구임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벌써 6월의 막바지다. 6월이 시작되면서 전국의 해수욕장이 개장하고, 자연들 또한 진초록으로 중무장한 채 행군 중이다. 뜨거운 열사의 앞에서도 당당해져야 할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푸르러야 할 세상이 어둡다. 문만 열면 언제든 다가오는 세상의 모습은 두렵고 무섭기만 하다. 생활은 더욱더 편리해졌고, 개인의 삶 또한 윤택해졌지만 현대 사회는 정신 병증으로 신음하고 있다.

‘프랑스’를 떠올려 보자. 패션의 도시, 화려함의 대명사, 누구나 가고 싶고, 살고 싶은 나라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구상에서 정신과 의사가 제일 많은 나라라고 한다.

2년 전쯤에 우연히 서울의 모 영화관에서 “꾸뻬씨의 행복 여행”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프랑스에서 제일 번화가인 파리에서 정신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 꾸뻬씨의 이야기였다. 꾸뻬씨의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직장을 갖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매사가 행복하지 못해 꾸뻬씨를 찾는다.

꾸뻬씨 또한 늘 그들을 상담하면서 자신의 행복감에 대해 확신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는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불행해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점점 더 피곤해졌고, 마침내 그 자신 역시 점점 불행하다는 생각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에 이른다.

‘행복을 목표로 삼는 것이 문제다’ 꾸뻬씨가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것을 수첩에 적어 놓은 말 중의 하나다.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답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행복해 지길 바라고, 행복을 위해 노력을 한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것이 그리 멀리 있지도 어렵지도 않다. 현재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욕심은 화를 부르고, 오해를 낳고, 무서운 일도 저지르게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살인 사건과 성폭력에 관한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대중매체를 장식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의 근원은 어쩌면 욕심일 것이다.

언제나 자신이 가진 것에 부족하다 생각되고 그것이 결국에는 불행하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러 과감히 행동을 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터부’라는 말은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더 친근한 용어일 것이다. 그것은 어떤 사회에서 신성하거나 부정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접근이나 접촉을 금하고 그것에 대해 말하기를 금하거나 꺼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나라 여성들은 유교사상으로 인해 많은 부분에서 제약을 받고 살아야만 했다.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는 속담을 보아도 유독 여자들의 행동에 대한 금기가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시대가 지나면서 여성들의 지위도 많이 향상되었고, 그만큼 사회에서 여성들의 영역도 넓어졌다. 하지만 남성들은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기는 것 같지는 않다.

얼마 전 강남역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은 여자들이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죽인 사건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많은 여성들은 분개했고, 이 사회와 싸우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과연, 세상의 반을 차지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남자들은 귀를 기울여 줄까.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꾸뻬씨의 말이 새삼 가슴을 두드린다. 세상의 반속에 살고 있는 여자인 나는 아니, 우리 모두는 지금 터부의 경계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어딘가에 숨어 있을 시원한 여름을 찾는 일일 수도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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