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날들을 반추하며
지나온 날들을 반추하며
  • 이관동<청주시 도서관평생학습본부장>
  • 승인 2016.06.23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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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이관동<청주시 도서관평생학습본부장>

초록빛 들녘과 짙푸른 쪽빛 하늘이 눈부신 유월이다.

올해도 벌써 반이나 지나가고 있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와 닿는다. 이제 며칠 후면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공직을 마무리하며 이런저런 감회에 젖는다. 얼마 전 망종이 지났다. 예부터 우리 선조는 망종 무렵이면 벼·보리 등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로 여겼다. 즉 이 시기가 모내기와 보리 베기에 가장 알맞은 때라는 얘기다. 나도 모처럼 시골 사는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갔다가 수확할 때가 다 된 보리밭 물결을 보고 어릴 적 생각이 나서 반가웠다. 또 그 옆으로는 줄로 친 듯이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모를 보자니,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 ‘햇보리를 먹을 수 있는 망종’이라는 옛말이 실감 났다. 보리는 벼와 달리 추운 한겨울에 씨앗을 심고, 길고 혹독한 계절을 자란 곡식이라 그 알갱이가 매우 거칠다. 이와 달리 벼는 아주 따뜻한 봄에 심고 더운 날씨에 자라서 그 알갱이도 연하다. 그래서 사람 입에는 벼가 더 당기지만 몸에는 보리가 훨씬 좋다.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온실과 같은 안락한 환경 속에서 지내온 사람과 거친 난벌과 같은 환경 속에서 지내온 사람을 비교할 때 인생의 파고를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은 양쪽이 확연하게 다를 것이다. 고난과 역경을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이를 묵묵하게 견뎌낸 사람은 든든한 인생의 갑옷을 입은 듯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보리가 주는 교훈을 되새기며 지난 38년간 나의 공직 생활을 떠올려 본다. 그 긴 시간을 나와 함께 한 선후배 동료공무원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척박하고 힘겨운 업무 환경 속에서도 굳은 일 마다 않고 한데 어우러져 울고 웃던 사람들......내가 여기까지 무탈하게 올 수 있도록 소리 없이 응원해준 소중한 이들...... 그렇게 서로에게 힘과 위로가 되는 귀한 만남으로 여기까지 왔다. 보통, 사람들은 정상에 우뚝 선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뒷면에 숨은 노력을 인정해 주기보다는 운이 좋아 쉽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은근히 폄하하곤 한다. 천재 작곡가라고 불리던 모차르트도 당대에 자신을 향해 천재성을 운운하며 자신의 노력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던 사람들을 야속해하며 친구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내가 쉽게 작곡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실수라네. 단언컨대 친구여, 나만큼 작곡에 많은 시간과 생각을 바치는 사람은 없을 걸세. 유명한 작곡가의 음악치고 수십 번에 걸쳐 꼼꼼하게 연구하지 않은 작품은 하나도 없으니 말이야.”

그래서 나도 요즘 후배들을 향해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노력은 반드시 보상받게 되어 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라고. 그럼, 때가 되면 값진 보람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라고. 그래서일까. 퇴직을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분주한 요즘!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달란트 비유로 착하고 충성된 종의 이야기다. 의미를 풀어보자면 ‘내게 맡겨진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함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 하였는갗 라는 뜻이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했다. 나는 과연 부지런히 맡은 일에 땀 흘려 수고하여 결실을 얼마나 거두었는가...진실로 착하고 충성된 종일까? 라고 반문해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내게 누군가 토닥토닥 용기를 주는 듯하다. “괜찮다. 다 괜찮다고. 정말, 열심히 잘~ 살았으니 다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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