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부러운 것은
진정 부러운 것은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 승인 2016.06.2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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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아직도 부러운 게 참 많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도 보냈고, 은퇴도 했고, 손녀까지 둔 할아버지가 되었음에도 부러움이 아지랑이처럼 돋아납니다.

부러움은 그리되고픈 열망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그 부러움이 양적 성장과 질적 성숙을 부르는 에너지가 되지만, 지나치면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지듯 화를 입기도 합니다.

아무튼 부러움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반증이며, 변화의 갈증이 있다는 표징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뇌리를 맴도는 부러움, 소박하면서도 간절하기 그지없는 부러움 들을 하나 둘 풀어놓습니다.

젊었을 때는 키 크고 잘 생긴 사람이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지금 부러운 것은 큰 키도 준수한 얼굴도 아닙니다.

키가 작아도 못생겨도 선한 얼굴이면 족합니다. 욕심 없고 측은지심이 있는, 언제나 잔잔한 미소를 띠며 누구에게나 편안함을 주는 온화한 얼굴이 진정 부럽습니다.

아름답고 총명한 눈보다, 맑고 자애로운 눈이길 원합니다. 위로 치켜뜨면 무섭다 하고, 내리깔면 무시한다 하고, 관심 있게 응시하면 느끼하다고 지청구를 줍니다.

하여 무섭지도 오만하지도 느끼하지도 않은 아이처럼 선한 눈빛을 가진 이가 진정 부럽습니다.

말 잘하는 유식한 사람을 부러워했습니다. 눌변일지라도 무식할지라도 진솔한 사람이 좋다는 걸 살면서 알았습니다.

하여 뼈 없고 꾸밈없는 편안한 목소리가 진정 부럽습니다.

빠르고 강한 사람을 부러워했습니다. 이젠 느리고 여릴지라도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면 족합니다.

잘난 사람보다 온유한 사람이, 돈 많은 사람보다 베푸는 사람이 진정 부럽습니다.

어릴 땐 돈이 많거나 지체가 높은 부모를 가진 친구가 부러웠습니다. 지금은 양부모님 모시고 오순도순 효도하며 사는 친구가 부럽습니다.

일류대학을 나와 돈 잘 버는 자식을 둔 부모가 부러웠습니다. 지금은 자식들이랑 외식도 하고 이곳저곳 여행하며 사는 부모가 부럽습니다.

예쁘고 돈 많은 여자랑 사는 남자를 부러워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착하고 음식 잘하는 수수한 여자와 사는 남자가 부럽습니다.

아니 크게 아픈데 없이 곱게 익어가는 은빛부부가 진정 부럽습니다.

헌금을 많이 하는 교우가 부러웠습니다. 이젠 신심이 깊고 봉사 많이 하는 교우를 부러워합니다. 아니 존경합니다.

겸손하면서도 품격이 있는 여유자적한 사람이 진정 부럽습니다.

최고를 꿈꿨습니다. 일이든 취미든 최고의 경지를 부러워했습니다.

이젠 아래위에 모두 낄 수 있는 중간이 좋습니다. 기죽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위아래를 모두 배려할 줄 아는 당당한 중간이 부럽습니다.

남보다 많이 소유하고, 더 좋은 것을 소유한 사람을 부러워했습니다.

이젠 대궐 같은 집도, 비까번쩍한 외제차도, 명품 옷과 가방도 부럽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경험과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해본 사람이 부럽습니다.

가족과 함께 5대양 6대주를 배낭여행 했다든지, 히말라야나 안데스산맥을 트래킹하며 호연지기를 키웠다든지, 문화예술을 많이 향유한 고매한 사람들이 진정 부럽습니다.

편안하게 영면한 사람이 부럽습니다. 죄 많은 인생이지만 마지막 날 입가에 엷은 미소 띠우며 안녕할 수 있으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이 또한 욕심이겠으나 설사 그럴지라도 그리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부러움의 보따리가 풀어놓고 보니 부끄러움이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부러움이 많다는 것은 부끄러움이 많다는 것이고, 해야 할 그 무엇이 남아있다는 뜻입니다. 아니 목하 철들어가고 있음입니다.

그러므로 그대의 부러움까지 사랑하겠습니다.

 

/시인·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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