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절장애사회
조절장애사회
  • 한현구<청주시 상당구 건설교통과 팀장>
  • 승인 2016.06.2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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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한현구<청주시 상당구 건설교통과 팀장>

우리는 근래에 매스컴, 인터넷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하여 유달리 많은 각종 사건, 사고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그 위험 수위도 점차 높아져 감을 느낍니다. 이는 과거에 비하여 사람들 내부에서 분노, 상실감, 욕구 등의 감정이 일어날 때 이를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징표라 하겠습니다. 이는 심리학 용어를 빌리자면 조절장애입니다. 비근한 예로 공시생의 투신, 묻지마 폭력이나 보복운전, 성적인 범죄 등이 그것입니다. 조절장애에는 충동 조절장애와 분노 조절장애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의 주변 곳곳에서 화기(火氣)의 기세가 오르니 우리 사회를 이익사회에 이어 조절장애사회라고 덧붙여 칭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도 원치 않을 것 같은 이런 조절장애사회, 혹은 참지 못하는 시대적 조류는 과연 도대체 어떻게 하여 부상하게 된 것일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를 창조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가진 마음, 정신, 사상 등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무엇보다 현대인이 과거에 비하여 인성(人性)이 결여되고 온정(溫情)이 군색하며 영성(靈城)이 미숙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흐트러진 정신세계가 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이로 인하여 우리 인간은 다시 상처받고 소외되고 불안하기에 조절장애를 가져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인성 결핍 등으로 인하여 조절 장애가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는 현재를 살고 있는 대부분 사람들이 겪고 있거나, 듣보고 있는 현대의 무한 경쟁주의에서 빚어진 것이라 봅니다.

조절장애 가운데 특히, 분노 조절장애는 충동 조절장애와 달리 상당히 대중화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분노나 충동을 참지 못하고 심각하게 도덕적이나 사회적으로 어긋한 행위를 하는 소수 사람에 대하여, 다수 대중이 또다시 분노를 표합니다. 후자의 분노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인가요 아니면 또 다른 분노의 촉매제일까요. 오래전 일이기는 하지만, 일찍이 대륙의 공자는 조선을 일컬어 동방예의지국이라 하여, 와서 살고 싶다고 했다던데 지금 우리나라, 우리 사회는 그 희망과는 꽤나 멀어진 듯합니다.

그럼에도 매우 다행스러운 일은, 우리 사회가 온통 분노나 충동 따위로 가득 찬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알게 모르게 선행을 실천하고, 자기가 가진 재능을 나누며, 희망을 키우고 전달하는 사람들이 흔하고 그러한 일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이 사회는 유지되고 있으며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인문학이나 예술, 스포츠나 음주 가무 등에 의한 힐링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조절장애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보건대 나눔과 봉사, 배려 그리고 촘촘한 복지는 더는 사치품이 아니라 사회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육식을 거부하여 채식주의자가 되어가는 것처럼 분노나 상처를 피하기 위하여 스스로 소외를 선택할 것인가. 그보다는 일찍이 시인 윤동주가 그의 시에서 썼듯이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욕된 마음의 거울을 닦아보기로 합니다. 매일 내 마음에 때가 낄지라도, 자그마한 실천 한 가지라도 하기 위해서이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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