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양간과 곳간
외양간과 곳간
  • 신금철<수필가>
  • 승인 2016.06.2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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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신금철

모내기로 채워진 들녘을 바라보면 마음이 흐뭇하다. 이 맘 때면, 나는 묘판에서 옮겨진 여린 모들이 땅의 기운을 받아 초록의 물결을 이룬 논두렁을 거닐며, 귀 기울여 개구리 소리를 즐겨 듣던 추억에 젖는다.

한여름, 시골에선 어두워야 저녁을 먹었다. 모내기가 끝나면 밭일이 많아져 어른들이 일을 끝내고 돌아오셔야 희미한 호롱불 아래 멍석을 펴놓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별이 반짝이는 여름 밤, 마당 한구석에 피워놓은 모닥불의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재를 남기며 타닥거리는 소리는 음악처럼 들렸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삶은 옥수수를 먹는 시간, 잠시 외양간을 둘러보시던 작은아버지께서 소가 없어졌다고 소리를 치셨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으니 그 시절의 소는 우리 집의 일꾼이오, 재산이오, 가족이었다.

갑작스런 소의 탈출로 혼비백산이 된 우리 가족은 호롱불을 들고 이 골목 저 골목을 샅샅이 뒤지고 철길을 넘어 들판으로 향했다. 소가 없어졌다는 소식이 알려져 동네 아저씨들이 모두 찾아 나선 덕분에 다행히 밤늦게 개울에서 소를 찾았다.

그 어두운 밤, 먹이도 충분히 주었는데 소가 왜 탈출했을까 알 수 없지만, 차일피일 외양간을 고친다면서도 일이 바빠 손을 대지 못한 탓에 하마터면 귀한 소를 잃을 뻔했다. 소를 찾은 다음 날 작은아버지께서 외양간을 튼튼하게 손을 보아 다시는 소가 몰래 집을 나가는 일이 없었다. 이 일로 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을 생각하며 신중하게 살피고 단속하는 습관이 생겼다.

얼마 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홀로 수리하던 19살의 고등학생이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두 사람이 해야 하는 작업을 혼자 하다가 일어난 사고였다.

한 학생의 죽음 뒤에는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정규직들이 고임금을 받으면서 정작 일을 해야 하는 직원들을 비정규직으로 내몰아 박봉에서 일하게 만든 탓에 한 사람을 억울한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착하고 성실했던 학생은 우리 모두의 귀한 자식이다. 그 사랑하는 자식이 대학에 갈 돈을 스스로 벌겠다고 나섰던 희망의 길이 비리로 얼룩진 허술한 메트로시티의 운영 탓에 기차 바퀴에 무참히 사라졌다. 이런 일을 당한 정부는 뒤늦게 외양간 고치기에 나섰다.

굴지의 대기업 대우조선이 어려움에 처해있다. 조선 해양에 공적 자금으로 투입한 혈세가 7조원이요, 전 국민이 1인당 13만 5천원씩을 대우조선에 준 셈이란다. 차장급 직원은 회삿돈 180억원을 횡령했고, 기업부실로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와중에도 정치권, 정부, 산은의 낙하산 인사들은 억대의 연봉과 함께 차량과 비서 등의 각종 특혜성 지원을 챙겼단다.

곳간을 맡긴 주인이 감시를 잘못하여 곳간 열쇠를 쥔 자들이 자기 것인 양 마음대로 퍼 날라 곳간이 통째로 비는 줄도 몰랐단다.

이렇듯 우리나라엔 부실한 외양간이 많아서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곳간에 쌓아둔 곡식들을 도둑맞는 사고가 잦다. 그런데도 외양간과 곳간을 고치고 단속해야 할 사람들은 바쁜 일들이 많아서 정신이 없다.

정부가 다시는 허술한 외양간 탓에 국민이 슬퍼하고 분노를 느끼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하고 튼튼하게 외양간을 고치고 곳간 열쇠를 잘 간수하여 국민이 피땀 흘려 지은 곡식을 양심 없는 자들이 자기 집 곳간으로 옮겨다 쌓아두는 일이 없도록 더욱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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