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무슨 죄가 있나
국민이 무슨 죄가 있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6.06.1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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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요즘 대한민국 각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어디 한 군데 멀쩡한 곳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곳곳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나라가 굴러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공적자금 7조원을 쏟아붓고도 사망선고를 받은 대우조선 사태는 무능이 아니라 부정·부패의 문제로 드러났다. 관료와 정계는 기업 살리기는 뒷전이고 낙하산들을 내려보내 혈세 도둑질에 급급했다. 여기저기서 꽂아넣은 사외이사가 60명에 달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조선업과는 무관한 대통령의 사진사까지 고문으로 영입돼 봉급을 챙긴 대목에서는 말문이 막힐 정도다. 조선·해운업계에 돈을 대출해줬다가 큰 손실을 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한국은행을 동원해 자본을 5조~8조원까지 늘려주기로 한 것은 이런 분탕질의 결과다. 국회 심의를 피하기 위해 꼼수가 동원됐으나 국민이 부담할 세금이 들어가는 것은 불문가지다.

검찰 수사를 받는 롯데그룹의 다양한 비리와 일탈은 재벌개혁의 절박성을 재차 웅변한다. 아버지 정신감정까지 몰고간 형제간 경영권 다툼으로 공분을 샀던 게 바로 엊그제 일이다. 그런데 지금 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자택까지 압수수색을 당했고 회장의 누나라는 사람은 면세점 입점 로비를 받는 과정에서 20억원대 뒷돈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헐값으로 계열사를 흡수합병하면서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는 롯데마트는 가습기 살균제 판매로 사망자 16명 포함 47명의 희생자를 내 사장이 구속됐다. 롯데홈쇼핑의 납품업체들에 대한 부당한 갑질도 도마에 올랐다. 열심히 롯데껌을 씹어서 그룹을 키워준 국민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배신감을 안기는가.

‘새정캄를 내세워 지난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국민의당은 국민에게 신선감이 아니라 실망감을 안기며 출발하고 있다. 비례대표 김수민 의원의 선거홍보비 리베이트 수수 의혹이 실체를 드러내고 있으나 당은 강건너 불 보듯하는 모습이다. 석고대죄도 모자란 판에 ‘돈이 당으로 들어오진 않았다’는 변명만 되풀이하며 딴전만 피우고 있다. 개혁의 상징으로 영입한 최연소 비례대표 의원을 중심으로 이런 일이 벌어진 점도 기가 막히지만 대처하는 태도에서도 새정치 냄새는 나지 않는다.

군의 비리는 이제 일상이 됐다. 이번에는 장병들에게 지급되는 침낭 납품비리가 감사원에 적발됐다. 국방부가 시중제품보다 비싼데다 2~ 3배나 무겁고 보온력이 떨어지는 저질 침낭을 납품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납품업체 선정과정에 허위 보고서가 등장하고 수천만원대 뇌물과 향응도 오갔다고 한다. 전투기와 잠수함 등에 얽힌 수조원대 방산비리에서 방탄복, 전투화, 수통, 고춧가루 납품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비리의 끝은 어디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이러고서도 국민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혈세로 연명하는 기업에 권력의 후원을 받고 내려온 수십명의 낙하산들이 게걸스럽게 혈세를 빨아먹는 한 켠에서는 월 144만원을 받기위해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싸들고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뺑뺑이 돌던 청춘이 있었다. 그가 그 고단한 현장에서 생을 마감할 때도 그가 소속한 용역회사에는 원청에서 날아온 낙하산들이 안정적 연봉을 보장받으며 진을 치고 있었다. 목숨을 걸어야하는 인생과 누군가의 목숨을 저당잡을 수 있는 인생이 공존하는 곳이라면 지옥이나 다를 게 없다.

정부와 비리 당사자들은 일이 터질 때마다 관련자들을 엄벌하고 재발 방지책을 세우겠다고 공언했지만 예외없이 공염불로 끝났다. 국민들은 앵무새 울음처럼 되풀이되는 기만적 뒷북과 거짓말에 신물이 날 지경이다.

이번 정권도 출범하면서 공적비리의 원흉으로 꼽히는 낙하산부터 없애겠다고 했지만 거꾸로 ‘낙하산 부대’ 규모가 역대 최대라는 평가를 받는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겠다던 그때로 돌아가 비정상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청천벽력같았던 지난 총선에서도 배운 것이 없어보이는 20대 국회 역시 그때로 되돌아가 유권자들이 내린 엄중한 명령을 곱씹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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