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시원(始原) - 점말동굴(1)
제천의 시원(始原) - 점말동굴(1)
  • 여은희<제천시문화관광해설사>
  • 승인 2016.06.1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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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 여은희

역사를 구분하는 데 있어 기록의 여부를 기준으로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나눈다. 기록 이전의 시대인 선사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남한에서 발견된 최초의 구석기 동굴유적이 바로 제천점말동굴이다.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의 잔재가 남아있었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구석기 문화가 없다고 하던 때가 있었는데, 1964년 공주의 석장리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굴되면서 구석기 시대 문화를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물이 살았고, 어떤 동물과 더불어 살았는지 그들의 생활뿐 아니라 기후 환경을 알아내기 위해 동굴 유적 발굴이 필요했다.

그 결과 1973년 동굴 유적을 찾아 다닌 지 7년 만의 쾌거로 선사시대 환경을 밝히고 뼈 도구 문화 연구의 계가를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고고학적 성과를 점말동굴에서 볼 수 있었다.

점말동굴의 발굴은 한자의 원조로 거북 껍질과 짐승의 뼈에 새겨진 중국 상 시기의 문자인 갑골문의 발견과 비슷한데, 갑골 중 일부가 용골(龍骨) 이라는 이름으로 베이징 한약방에 유통된 것이 발굴의 계기라면, 점말동굴은 금속탐지기를 사용, 구덩이를 파고 큰 뼈, 큰 뿔 등을 파서 그 중의 일부를 골라 서울의 한약국에 팔았다고 하는데 그것이 연계되어 연세대 손보기 교수에 의해 발굴 작업이 시작된다.

점말동굴은 30m 높이의 바위 동쪽 끝에 뚫려 있는데, 동남향으로 열려 있어 햇볕이 잘 들고 서·북쪽을 병풍처럼 바위벽에 높게 둘러싸고 있어 차가운 서북풍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점을 지니고 있어 이 일대에서 알려진 동굴들 가운데 사람이 들어 살기 좋은 안성맞춤의 입구 모양과 수평굴 형태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이 병풍바위 위쪽에서 동물을 몰아 낭떠러지로 떨어뜨리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어 동물을 사냥하기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음은 물론 밑바닥 쪽은 평평한 마당이 펼쳐 있고 그 앞으로 흐르는 물줄기로 옛사람들이 삶터로 쓰기에 뛰어난 천혜의 요새라고 할 수 있다.

동굴 앞에서 굴을 보면 오른쪽으로 용의 눈같이 보인다고 하여 용굴 이라고도 불리며, 동굴의 구조는 용굴, 사잇굴, 옆굴, 땅굴로 구분한다.

1973년~1980년 7차례에 걸친 제천 점말동굴의 발굴결과를 연세대학교 박물관 발행의 『제천 점말동굴유적 종합보고서』를 통하여 정리하여 보면, 털코뿔이·동굴곰·짧은꼬리 원숭이 등의 동물화석 20종을 비롯하여 사냥감·석기·예술품 및 식물화석 등 풍부한 고고학적 자료는 유적의 시대편년과 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 및 생활상과 기술발달과정 등을 밝히는 데 중요한 유적이 된다.

또한 지금까지 동굴학(Speology)에서 잘 알지 못했던 제4기 퇴적물과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화석들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데도 도움이 되었으며, 고고학사적으로는 점말동굴 조사가 우리나라 최초의 동굴 발굴의 사례고 동굴의 퇴적 조사·기록·분석방법, 화석의 감정, 생물개체가 죽은 뒤에 지층에 매몰되어 화석으로 발견되기까지의 기간에 관하여 연구하는 분야의 타포노미 [taph onomy] 연구, 뼈 도구 문화연구 등 종합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방법의 필요성을 제고하여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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