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안 걸린다는 오뉴월 감기로 어언 일주일째 고생이다. 눈도 뻑뻑하고, 얼굴 근육도 아프고, 목은 심하게 아픈 데다 퉁퉁 붓기까지 했다.
과수원 일이 한창 바쁠 때 몸이 이 지경이니 일이 자꾸 밀린다. 문제는 삼시 세끼 밥을 좀 잘 먹어야 이겨 낼 것 같은데 이놈의 밥알이 아무리 씹어도 입안에서 뱅뱅 돌기만 한다.
거기다가 악명 높은 중국발 미세먼지까지 목의 통증을 가중시킨다.
푸짐하게 잡히는 옆구리 살을 걱정하며 제발 입맛 좀 없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내 식성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너무 배가 고프니 이제야 알겠다.
내가 어릴 때는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인사를 몰랐다.
“아침 잡샀는기요?”
“그래, 니도 밥 묵었나.”
길을 가다 동네 어른을 만나면 그렇게 인사했다.
어른들은 식사 전이라도 당연히 그렇게 대답했다.
어른을 만나도, 친구들을 만나도, 그 누구를 만나도 식사 잘했는지 물으면 공손하고 인사성 바른 아이로 통했다.
식사를 하지 않았으면 차려줄 것도 아니면서 인사는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
보리밥도 배불리 먹지 못해 배가 고픈 사람이 더러 있던 시절이었으니 삼시세끼 끼니를 잘 챙겨먹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최고의 인사였던 것 같다.
어느덧 세월이 바뀌어 모두를 배가 너무 불러 탈인 시대가 되었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한 숟가락만 덜 먹기 위해 용 쓰는 사람, 아침마다 저울 위에 올라가는 것이 일상이 된 사람, 아예 다이어트 중임을 선언하고 주위의 협조를 구하는 사람까지. 우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부른 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이런 시대에도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학대 아동, 독거노인, 그리고 너무 바빠서 밥 먹을 시간조차 없는 사람들….
또 사고가 나고 말았다.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미처 들어오는 전철을 피하지 못한 채 열아홉 청년이 숨지고 만 것이다. 정규직으로 전환 될 미래를 꿈꾸며 책임감 있게 일한 청년, 청년의 가방 속에는 뒤섞인 공구와 함께 컵라면과 나무젓가락이 나왔다.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쁜 근무 환경에도 150만 원의 월급 중 100만 원씩이나 적금을 부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배가 불러서 탈일 때 먹을 시간이 없어 배가 고팠던 청년….
그런데 메트로 측이 이번 사고를 그렇게 성실하게 일한 청년의 탓으로 돌리려고 했다.
피해자가 2인 1조로 다녀야 한다는 규정을 어겼다는 것이다. 이에 그 어머니는 잘못이 있다면 아들을 책임감 있게 키운 게 잘못이라며 절규했다.
사고 다음 날은 청년의 생일이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차려주는 따뜻한 미역국의 생일상을 기대하며 점심을 컵라면으로 때웠을 청년. 그러나 청년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이제 시간에 쫓기지도 않으며, 때도 거르지 않고, 비정규직의 서러움도 없는 그곳에서 부디 편안하시기를.
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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