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3)
살구나무(3)
  • 반영호<시인>
  • 승인 2016.06.1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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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반영호

고향에는 수령을 알 수 없는 느티나무가 있다. 어찌나 큰지 열 명이 안아도 모자라는 엄청난 굵기인데, 지금도 예전 모습 그대로 여전히 푸르름을 자랑하며 참으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늠름하게 서 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그땐 늙은 고목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오히려 젊은 나무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 나만이 60년 시간이 흘러갔을 뿐 느티나무와 세월과는 아무 상관이 없단 말인가. 나의 한 생을 바라다보았을 느티나무. 아니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 그 이상의 조상님들 삶까지 지켜보았을 느티나무. 그럼에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반듯하게 서 있는 느티나무. 느티나무가 보기에는 내 한 생이 그저 한낮 하루살이 삶 정도밖에 더 되겠는가. 고향을 떠나 잊을만할 때 찾아와도 무덤덤 반겨주는 속 깊은 느티나무. 앞으로 몇십 년. 몇백 년을 더 살아도 변함없이 그대로일 느티나무.

어릴 적 그 느티나무는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약속이나 한 듯이 느티나무 아래로 모였고 거기서 숨바꼭질도 하고 비석치기, 자치기, 팽이치기 등을 하며 밤이 이슥하도록 놀았다. 느티나무는 속이 텅 빈 고목이었다. 집에서 야단을 맞고 갈 곳이 없을 때 숨거나, 학교에 가기 싫은 날 땡땡이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속이 빈 느티나무는 비 오는 날도 비를 맞지 않고 놀 수가 있어 좋았다.

정월 대보름이면 그곳에 떡을 갖다 놓았다. 어머니는 동산의 큰 바위와 느티나무에 갖다 놓으라며 팥떡과 백설기를 바가지에 싸주셨는데 매일 노는 곳임에도 그렇게 무서웠다. 그곳은 도깨비가 있느니 귀신이 산다느니 하는 말들을 종종 듣기도 했었으니 어린 마음이 오죽했을까.

비 오는 밤 도깨비불을 직접 보았었다. 파란 불빛이었다. 다음날 친구들에게 말했으나 아무도 믿어주질 않았다. 하도 답답하여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허허. 느티나무에 도깨비가 산다?…… 느티나무에 갈 땐 조심하거라’처음엔 그렇게 농을 하시더니 얼마 후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동물의 뼈나 고목에서 인화수소 성분이 발생하는데 습기가 많은 날 그 인 성분이 푸른빛을 발산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본 그 푸른 발광체는 느티나무 고목에서 배출되는 인화수소였던 것이다. 지금도 텅 빈 느티나무 속에서 빛나던 그 파란 불빛을 생각하면 머리가 쭈뼛하고 가슴이 오싹하니 오금이 저린다.

나무는 나이테로 수령을 알아보는 것인데 나이테가 썩어 문드러져 속이 비었으니 느티나무의 나이를 알 수 없다. 나는 아직 고향의 그 느티나무만큼 굵은 나무는 보지 못했다. 울릉군 도동항 기암절벽에서 자라는 향나무가 최고령목일 가능성이 제기된 석목. 직경 1·5m, 둘레 4~5m의 거목보다 더 굵은 고향의 느티나무다. 울릉도 석목이 실측조사 결과 수령이 5천~6천년이라면 도동항 향나무보다 더 오래된 세계 최고의 거목은 아닐까? 도깨비불을 보았다는 내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던 것처럼 사람들은 또 이를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불비(餘不備)하고 모두를 비웠으니 비운만큼 오래오래 장수하리라.

화단에 옮겨 심은 살구나무가 잎을 싱그럽게 달고 제법 모양새를 낸다. 살구나무는 느티나무만큼 거목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거목이 되는 종자도 장수하는 씨도 아니다. 오래 살지 못하고 아름드리로 굵어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아담한 나무로 자라 맛을 낼 것이다. 막노동꾼이 있고, 장사꾼이 있고, 월급쟁이가 있고, 예술가도 있고, 정치하는 사람이 있듯이 나무는 나무마다 특성이 있어 나름 제 품격을 맞춰 살아간다. 내가심은 저 살구나무에 바라는 것은 빨랫줄 한 줄 맬 정도로 커서, 화사한 봄날 연분홍 꽃을 활짝 피워내고 가을에 새콤달콤한 살구 몇 알 달려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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