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담(無龍談)
무용담(無龍談)
  • 정현수<칼럼니스트>
  • 승인 2016.06.1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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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정현수<칼럼니스트>

열다섯 살이었다. 아버지는 옥수수 천 평을 심어 밭떼기로 팔았는데 출하시기에 가격이 폭락했다. 옥수수를 사기로 한 장사꾼은 나타나지 않았다. 밭떼기도 계약 재배이므로 시세와 상관없이 옥수수 값을 줘야 마땅하지만 장사꾼은 손해 보기 싫다며 나자빠졌다. 장사꾼을 여러 번 찾아갔지만 끝내 돈을 받지 못했다. 출하시기를 놓친 옥수수는 날마다 늙어갔고 실망한 아버지는 매일 술만 드셨다. 취한 아버지는 너는 절대 농사짓지 말고 사무실에서 도장 찍는 사람이 되라며 서러워하셨다.

아버지를 울린 장사꾼에게 통렬히 복수하고 싶었다. 그가 얼마나 미웠으면 야음을 틈타 몽둥이를 들고 찾아갈까 하는 끔찍한 생각을 했겠는가. 하지만 몽둥이 대신 책을 펼치는 것으로 내 복수는 싱겁게 마무리되고 말았다. 출세해서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게 장사꾼에게 가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가 될 거로 생각했다. 공부는 내가 상층으로 이동하는 사다리였던 것이다. 그날 평생 개천이었던 아버지의 눈물을 보고 나는 용이 되기로 했다.

사회경제학에 「상향 이동」이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녀들이 미래에 상층으로 이동할 거라는 기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높은 경제 성장률과 함께 사회적 분배가 제법 건전할 때는 개천에서도 용이 났다. 개천에서 굴러먹어도 자녀들만큼은 승천시키겠다는 부모들의 눈물겨운 뒷바라지가 어느 집이건 다르지 않았다. 장사꾼에게 옥수수 값을 받지 못해 실망했다가도 아들 공부하는 소리에 다시 일어났고 아들은 아버지 눈물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신문배달 소년이 고시에 합격하는 상향 이동이 사회 곳곳에서 드라마틱하게 일어났다.

이제 세상은 변했다. 안타깝게도 OECD국가 중 우리나라의 상향 이동률이 가장 낮다.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대는 지났건만 한국의 부모들은 기대를 내려놓지 않는다. 기득권들의 부패에 크게 분노하지 않는 것도 자녀들이 사회 지도층이 될 거라는 기대와 관련이 있다. 이 기대는 자녀가 어릴수록 크고 자라면서 작아진다. 상향 이동에 부모 재력이 절대적임을 깨닫고 근거 없는 기대를 내려놓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상향 이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가 점차 낮아지고 있음을 통계청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통계청이 자녀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본인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있는지를 조사했더니 1994년에는 5.1퍼센트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2013년에는 부정적 전망이 무려 43.7퍼센트로 늘었다. 자녀들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못하게 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절반 가까이 육박했다. 이는 부모가 흙 수저면 자녀도 흙 수저가 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더 이상 용은 없다.

아버지 제사를 며칠 앞두고 고3 아들을 생각한다. 새벽까지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으면 기특하기도 하지만 상향 이동이 떠올라 이내 우울해진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였던 제도권 교육이 계층 대물림의 통로가 되고 아들이 그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면 더욱 우울하다. 대학 입학부터 취업을 준비해도 미래는 불투명하고 자아실현은 순진한 이의 철딱서니 없는 말이 되었다. 그러니 아들에게 조금만 더 노력하라고 보챌 수가 없다. 아버지 바람대로 사무실에서 도장 찍는 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개천이다.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이 언제든 돌아와 발 담그고 쉴 수 있도록 건강하고 깨끗하게 나를 가꾸어야겠다. 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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