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한복판에서
6월의 한복판에서
  • 정규호 <문화기획자 ·칼럼리스트>
  • 승인 2016.06.1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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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그해 6월의 가슴은 뜨거웠다. 29년 전 오로지 민주주의와 정의만을 외치던 광장은 핏빛을 띤 순수함이었고, 용광로 같은 열정이었다.

그 해 우리 모두는 당연히 가장 나쁜 것을 제거하면, 그리고 그 가장 커다란 모순과 싸워 이기면 나머지 모든 것들은 저절로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앞 뒤 가릴 겨를 없이, 해방 이후 단 한 차례도 마음껏 외치지 못했던, 그리하여 4월에서 5월로, 다시 6월로 이어지면서 그 수많은 피눈물이 헛되지 않기만을 간절하게 바라던 민주주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

아! 그러나 한 세대를 넘기는 세월을 보낸 지금 우리는 감히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말하지 못한 채 성급한 불볕더위에 몸서리치는 극단의 시대를 살고 있다.

소득 불균형은 갈수록 커지는데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철밥통 공직사회에서나 통용되는 신화 혹은 전설이 되고 있다. 하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비정규직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 국민의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는 세상을 어찌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가장 먼저 직장에서 쫓겨나고,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하는 가장 큰 위험에 포위돼 있으며, 원청보다 터무니없는 임금과 차별대우에 시달리는 불평등이 만연돼 있는 나라. 6월의 한복판에서 숙성되지 못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여전히 피에 굶주린 모습으로 신음하고 있다.

거리를 뜨겁게 달구었던 29년 전 6월 항쟁 이후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빼앗기고 잃어버렸다. 극소수의 지배계층은 독재 대신 민주주의를 내주고 권력과 부,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마저도 송두리째 독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 와중에 사회 전반에 걸쳐 도덕이 무너지면서 폭력과 성범죄가 난무하고 있고, 조금이라도 힘이 있는 집단은 함부로 혐오하거나 미워하면서 극단적인 대립을 서슴지 않고 있다. 바다와 육지를 가리지 않는 세월호를 닮은 희생은 이 나라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앗아 가고, 생명도 끊어 놓고 있는데, 국가가 지켜주지 못하는 이 땅을 헬조선이라 부르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다.

문제는 이 모든 불평등과 부당함, 그리고 모순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타살과 도덕의 말살에 대한 근본적 처방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

세월호를 비롯해 서울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 도어 희생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모든 불의와 부정, 부당함의 원인인 뿌리는 건드리지 못한 채 소 잃고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지 못하는 표피적 대응만을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남발되는 사과와 재발방지의 약속은 이제 허무하다 못해 지겹다.

우선 눈에 거슬리는 책임자 색출을 통해 세상의 모든 분노를 쏠리게 함으로써 꼬리 자르기에 불과한 미봉책으로 절대다수의 국민의 분노를 다스리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사회적 참사에 대한 근본적이고 원천적인 원인 규명 없이 처벌 위주의 대처는 얼마나 오래 계속돼 왔고, 앞으로도 얼마나 지루하게 계속될 것인가.

처벌을 통한 본질의 왜곡 대신에 철저한 원인규명 중심의 대처가 절실하다. 그래야만 사회적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모순을 거듭 되풀이해서는 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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