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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1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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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조선총독부를 계승했는가
김 승 환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대한민국은 조선총독부를 계승했는가 대한민국 국회와 대한민국 행정부는 일제 조선총독부의 후신인가.

아마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분명히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를 계승했다고 적혀 있다. 3·1 민족해방운동의 결과로 성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했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해괴하게도 대한민국은 오히려 조선총독부를 계승했다는 증거가 있으니 이 어찌된 사실인가.

국가보훈처에서 작성한 독립유공자 단재 신채호 선생의 인적사항에는 원적과 본적이 공란이다. 다른 문서도 그렇다. 말하자면 원적이 없고 본적도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국적(國籍)이 없는 것이다. 원적이나 본적 그리고 국적이 없다는 것은 일제 총독부의 행정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증거다.

국가기관이 이럴진대 친일잔재의 청산은 여전히 요원한 일임에 분명하다. 만약 일제시대의 호적법에 의한 기록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라면 그것이 바로 식민지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고 또 일제의 잔재(殘在)가 그대로 상존한다는 증거이다.

국적은 원래 살아 있는 사람이 가지는 것이므로 사망한 사람에게는 필요가 없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국적은 국민국가(nation state)의 근대적 제도다. 즉, 봉건시대의 전제군주 시절에는 국적이라는 것이 없었다.근대 국민국가가 성립된 이후 각 국가는 자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적 일체감을 가지도록 국적제도를 창안했다. 불행하게도 조선은 근대 국민국가를 만들지 못한 채 일제에 병탄되고 말았다.

1910년 단재는 국운의 쇠망을 비통한 가슴에 품고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그는 독립된 근대 국민국가를 만들기 위하여 목숨을 바쳐서 저항했다. 그러던 중 1936년, 어둡고 추운 이국의 감방에서 민족광복의 그날을 기리면서 한줌 재로 스러져 갔다. 이런 단재에 대해서 국민국가인 대한민국은 마땅히 국적을 회복시켰어야 했다.

단재는 일제를 부정하고 민족을 되찾기 위하여 저항했으며 근대 국민국가를 수립하고자 했던 것이므로 국민국가 대한민국의 국적이 부여되어야 하는 것이다.

더욱 통탄할 일은 친일파들이 민족을 반역한 대가로 호의호식과 영화를 누렸다는 사실이다. 그뿐인가. 그들은 자식을 비교적 잘 교육시켰고, 자손에게 적지 않은 재산을 물려주었다. 반면 애국지사들은 간난(艱難)과 고초를 겪었기에 자식을 교육시키지 못했고, 또 재산도 물려주지도 못했다. 결국 오늘날에도 친일파의 자손은 신분을 계승하여 상류층으로 사는 반면 애국지사의 자손은 하층민이나 빈민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이렇게 불평등할 수가 있는 것인가.

대체 법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사회정의와 평등을 구현하는 법이 국가를 위하여 헌신한 사람들은 홀대하고 거꾸로 매국과 반역을 한 자들을 보호한다면 법은 부당을 용인하는 지배의 수단일 뿐이다. 특별한 사안의 특별한 문제에 대해서는 특별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민족문제와 민족정신사의 과제인 것이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여야의 국회의원 36명은 2005년 11월, '국적법 일부 개정안'을 상정했다. 그런데 어렵사리 제출된 이 법안 또한 지지부진하여 통과 여부조차 가늠할 수 없다. 그러매, 국회의원들에게 묻는다. '대한민국 국회는 조선총독부를 계승한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 것인가' 정부에게 묻는다. '대한민국은 조선총독부의 후신인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후신인가'.

통탄할 이 사태에 대해서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은 국회의원들은 훗날 명예롭지 못한 이름이 후세에 전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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