푼돈과 껌값=소탐대실
푼돈과 껌값=소탐대실
  • 박숙희<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 승인 2016.06.12 2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 박숙희

마음의 문을 열고 더 자세히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를, 가진 것 없이 줄 수 있는 삶으로 반추하려는 「직지」상권 열 아홉 번째 이야기는 영가 현각 대사(永嘉玄覺大師)의 말씀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 화엄사 주지 각성스님의 ‘직지’ 번역 및 강해(1998년) 등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영가 현각 대사가 조계에 이르러서 주장자를 떨치고 섰거늘 6조 혜능 대사가 말씀하시기를 “대저 사문이란 자는 삼천 위의와 팔만 서행을 갖추어야 하는데 대덕은 어느 곳에서 왔기에 큰 아만을 내느냐?” 영가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나고 죽는 일이 크고 무상함이 신속하거늘 어느 겨를에 예의를 갖추겠습니까?”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무생의 도리를 체득하며 신속함이 없는 것을 요달하지 아니하느냐?”영가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체득함에는 곧 아는 것이 없고 아는 것에는 본래 신속함이 없습니다.”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그와 같고 그와 같으니라.”영가 대사는 6조 혜능 스님의 제자란다. 6조 혜능 대사의 5대 제자를 말할 때 남악 회양, 청원 행사, 영가 현각, 남양 혜충 국사, 하택 신회 선사를 말한단다. 영가 대사는 <영가증도가>를 쓰신 분. 영가는 지명인데 거기서 늘 계셨단다.

영가 스님이 처음에 6조 스님이 계시던 절에 오셔서는 주장자를 잡고서는 예배도 하지 않고 고개도 숙이지 않았단다. 그러니까 6조께서 왜 그렇게 아만을 피우느냐고 말씀을 하신 것이란다.

무상이 신속하다는 것은 생사가 날숨과 들숨에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영가 스님이 천태학을 많이 공부하고 지관법을 많이 닦았는데 <유마경>을 보다가 깨달았단다. 그런데 사형제간인 현책이란 스님이 영가를 만나러 왔는데 영가와 말을 해 보니 깜짝 놀랄 정도인 것이었단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습니까?”하고 물으니 “나는 <유마경>을 보다가 깨달았다.”는 것이었단다.

그래서 6조 스님의 제자가 되어 있던 현책 스님이 말하기를 “불조가 이 세상에 나오시기 전에는 스스로 깨달아도 되지만 나오신 후에는 인가를 받지 않고 자기 혼자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천연외도(天然外道)다. 지금 6조 스님이 세상에 계시니 그분을 친견하십시오.”라고 하였단다.

영가 스님이 그 말을 듣고 현책 스님과 6조 스님의 문하에 찾아갔던 것이란다. 그런데 그때 절도 하지 않고 주장자를 들고 서서 있으니까 “이 사문은 왜 그렇게 아만이 높냐?”고 말씀하신 것이란다. 그러나 영가 스님과 대화를 해 보시고는 단박에 인증하셨다는 것이다.

혜능 대사 말씀 “그와 같고 그와 같으니라.”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켜온 부자의 규칙이 있다. 그 첫째는 돈의 씨를 말리지 말라는 것이겠다. 경주 최 부자 가문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이가 없게 하라는 가훈을 지켰단다. 이는 이웃 먹을 몫은 손대지 말고 남겨 두라는 뜻일 것이다. 최 부자 집안은 이 가훈을 400년 동안 대대손손 물려주었단다.

근래 생긴 일련의 사건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재벌의 졸부화로 부를 만한 현상. 즉 푼돈과 껌 값=소탐대실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사회를 혼탁하게 하고 있다. 이것은 곧 부자는 부자답게 큰 돈벌이를 해야 한다는 채찍의 의미가 아니겠는지.

그런데 요즘 재벌 오너 일가는 작은 돈벌이까지 내버려두지 않는 경향이 많다.

재벌가 딸이 커피숍에 손대고 1000억 부자가 몇십 억에 영혼을 판다. 이러니 부자가 존경받지 못하는 것이겠다.

이는 6조 스님의 제자가 되어 있던 현책 스님 말씀 “천연외도(天然外道)”를 곰곰이 사색하게도 한다. 한국자본주의는 많은 진보를 이루었지만 돈의 철학은 여전히 후진국 즉 푼돈과 껌 값=소탐대실이 판치는 형국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