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나무와 직박구리
앵두나무와 직박구리
  • 김희숙<수필가·원봉초 병설유치원 교사>
  • 승인 2016.06.09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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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초록이 우북한 계절이다. 무작정 드라이브를 나섰다. 상당산성을 지나 쭉~ 정처 없이 내달렸다. 햇살은 세상에 골고루 제 살점을 떼어주고 있고 나무들은 그 살점을 받아먹고 무럭무럭 푸르게 부풀고 있었다. 상념에 젖어 달리다 보니 보은까지 가게 되었다.

백여 년 전에 지었다는 99칸짜리 선씨네 집에 발을 들였다. 이제는 쇠락한 집의 내력을 펼쳐 놓은 듯한 드넓은 마당이 하얗게 누워서 고요를 지키고 있었다. 담장 밑엔 앵두나무가 졸망한 앵두를 다닥다닥 가지에 달고 서 있었다. 그 투명한 충혈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냉큼 손을 뻗어 앵두를 훑었다. 그 동그란 살들을 입안으로 털어 넣고 계절을 음미했다. 한걸음 떨어진 곳엔 마거릿과 금계국이 바람에 몸을 흔들며 키 재기를 하고 있었다. 달맞이꽃도 노란 꽃잎을 벌리고 햇살에 몸을 말리고 있었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앵두나무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루비처럼 반짝이는 앵두를 뭉근하게 쳐다보더니 그 둥근 보석을 콕콕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르르 창공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허공은 잠시 직박구리에게 몸을 내주더니 이내 푸른색으로 돌아갔다. 나도 시선을 거두어 정원을 바라보았다. 정원 한 켠에선 장미가 흐드러지게 웃고 있다. 한참을 꽃에 정신을 팔고 있는데, 어느 틈에 날아왔는지 작박구리가 또다시 앵두나무에 앉아 있다 날아간다. 그 모양이 마치 엄마 품을 벗어나는 자식 같다. 마음 내키는 날 홀연 날아와서는 잠시 머물다 가고 마는 자식. 자신이 필요할 때만 찾아오는 손님 같은 자식. 그렇게 직박구리는 제멋대로 날아와서는 지 맘껏 앵두를 찍어대다가 날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앵두나무는 조용히 가지를 내어주고 그 자리에 말없이 있었다.

엄마도 그렇게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열 달 배 아파 낳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이며, 학교 보내고 키워 놨더니만 저 사느라 바빠서 당신은 안중에도 없는 나를. 엄마를 찾아간다는 게 고작 어버이날이나 생신, 그리고 명절이 다다. 삐쭉 밥 한 끼 사드리고 봉투나 내밀고 할 일 다 한 듯 여름 소나기처럼 서둘러 가버리곤 하는 몹쓸 딸이다.

휴가 나온 아들놈을 보며 나를 되돌아본다. 휴가는 나왔는데 집엔 들어오지 않는다. 어제는 친구들과 술 마시고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고 하더니, 오늘은 친구들과 팬션에서 자고 온단다. 오밤중에 겨우 들어와서는 옷이나 갈아입고 또다시 나간다. 서운하고 서운한 마음을 누를 길이 없다. 우리 엄마도 그랬으리라. 그래서 어미가 되어보지 않고는 어미의 심정을 알 수 없다고들 했나 보다.

앵두나무처럼 땅에 발이 묶여 이제나 저네나 직박구리를 기다리는 것이 엄마의 마음 아닐까.

모든 것을 다 내주고도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붙박혀 소금기둥처럼 서 있는 앵두나무. 나의 앵두나무가 보고 싶다. 오늘 밤은 나의 앵두나무에게 전화라도 돌려봐야겠다. 빨갛게 웃으며 보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언제 오냐고 말할 것이다. 나는 대답하리라. 나도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고. 조만간 보러 가겠다고. 앵두나무 가지마다 엄마 얼굴이 다달다달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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