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 삶을 살아 낸다는 것
산다는 것, 삶을 살아 낸다는 것
  • 김희숙<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 승인 2016.06.02 2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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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전화벨이 울린다. 오늘은 할 일이 남아있어서 그 누구의 전화도 받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벨이 요란하게 밤의 정적을 깨고 울린다. 흔들린다. 요즘 수화기를 잡았다 하면 최소 한 시간이다. 음성통화 무제한으로 요금제를 바꾼 후 그녀들이 전화를 해오면 내가 다시 그녀들에게 전화해서 사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런 내게 남편은 말한다. “당신은 여자들을 끊어야해~ 그렇게 전화를 놓지 못하니 어쩌냐? 오늘은 이사람 내일은 저사람 전화통을 달고 사니. 상담소를 차리던가.” “알았어 짧게 할 거야.” 난 건성으로 대답한다. 그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퉁퉁거린다. “그러면서 나만 보면 만날 피곤하다고 하지. 전화 통화 할 때는 목소리가 낭랑해지고.” 난 눈을 하얗게 흘긴다.

그녀의 이름이 핸드폰 화면에 자꾸 떠오른다. 아픈 날인가 보다. 안 받으려 다짐했던 마음의 빗장이 자꾸 헐거워진다. 그러나 오늘 해야 할 일이 남은 터라 길게 통화 할 수는 없었다.

난 전화를 받자마자 그녀에게 양해를 구했다. “오늘은 간단히 하자. 나 할 일 있어.” 그녀가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 그녀의 목소리에서 묘한 파동이 감지되었다. 목소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다친 마음이 전달된 것이다.

오늘 후배에게 자기가 너무 말을 많이 한 것 같아 후회된다고 했다. 후배에게 A라는 여자 이야기를 좋지 않게 했다고 한다. 자신의 강의 방식에 대해 평가절하의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는 A 때문에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A뿐 아니라 A와 연루된 후배까지도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다며 오열한다.

난 “그건 A의 스타일이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거지. A는 즉흥적으로 말만 쏟아냈을 뿐, 더 이상 너에 대해 신경 안 쓸 사람이야. 왜 너는 그 여자를 그렇게 신경 쓰니? 그냥 그대로 그런 사람이라고 받아들여. 남에게 보이는 너의 모습을 신경 쓰지 말고 너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게 중요한 거 같아. ” 라고 말했다.

난 그녀에게 아들러의 심리학 책을 추천해 주었다. 그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늘도 한 시간 반을 통화했다. 할 일이 남아있는데, 온몸은 푹 젖은 빨래처럼 무겁다. 그녀는 끊으려는 내게 오늘 한 말은 비밀로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나는 기억력이 반편이라 금방 잊는다고 말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녀의 음성이 귓가에 다슬기처럼 다닥다닥 남아있다. 그녀의 말들을 떼어 정리하며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 나에게 나직이 물어본다. 나는 과연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가. 남에게 보이는 나를 너무 의식하고 있지는 않은가. 진실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 사람들 사이에서 산다는 것, 삶을 살아낸다는 것 참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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