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걸음으로
달팽이의 걸음으로
  •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6.06.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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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김경순

언제부터였을까. 처음 그때는 햇빛에도 빛나던 카멜색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윤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짙은 밤색이다. 충주 방향 36번 지방도 4차선 도로, 중앙분리대 밑에는 구두 한 짝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 이전에는 누군가의 소중한 발이 되어 세상을 누볐을 것이다. 카멜색 구두의 주인은 지금 어디 있을까. 잃어버린 구두 한 짝을 찾고는 있을까. 어디쯤에서 잃어버린 것인지 잊은 것은 아닐까. 그도 저도 아니면 이제는 이곳을 찾아올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일까. 공상은 간단없이 또 다른 상상으로 이끌고 있다.

3월의 어느 토요일, 서울서 열리는 세미나에 가는 길이었다. 다음날이 용인에 있는 큰딸아이 생일이라 세미나가 끝나고 자고 올 요량으로 몇 가지 반찬까지 챙기다 보니 시간을 지체하고 말았다. 다행히 주말임에도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액셀에 힘을 주게 되고 앞차의 속도에 맞춰 과속도 서슴지 않는다.

그때였다. 잘 달리던 앞차의 양쪽 바퀴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끼익 ~’ 소리를 내며 앞차가 급정거하는 것이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다. 우선 2차로로 넘어갔다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핸들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1차로로 핸들을 꺾는 찰라, ‘퍽’ 소리와 함께 무언가 큰 물체와 부딪쳤다는 느낌이 나고 그 뒤로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달팽이가 천천히 길을 기어가고 있다. 아니다. 제 딴에는 뛰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점액질을 뿜어내면서 길을 내고 있다. 가는 길은 언제나 실패가 없다. 누구와 부딪치지도 않는다. 답답해 보이는 건 우리뿐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달팽이 편에서 보면 대책 없이 빨리 빨리만 외치는 사람들이 한심해 보일 수도 있겠다. 무거운 제 집은 자신을 다스리고 고독을 삭히는 공간이다.

달팽이들은 모두가 철학자일 것이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먹고, 혼자 길을 간다. 또, 쉼 없는 사색도 도저하게 한다. 그래서 아무리 사소한 것도 무심코 지나치지 않는다. 위험한 순간이 오면 온몸을 제 집 속으로 단단히 집어넣고 기다린다. 한순간도 실수란 없다. 더듬이는 귀가 되고, 눈이 되어 세상과 소통을 한다.

25t 덤프트럭과의 충돌로 잠깐 의식을 잃었음에도 내 차는 갓길에 서 있었다. 차는 조수석 쪽으로만 부서졌을 뿐 나는 멀쩡했다. 천우신조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위험도 감지 못하고, 그런 무서운 질주를 하다니 아찔하고 무섭기만 하다. 죽음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카멜색 구두의 주인도 혹여 그때의 나처럼 겁도 없이 세상을 질주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달팽이에게는 눈도 귀도 코도 없지만 그 모든 것을 감지해내는 훌륭한 더듬이가 있다. 우리 인간은 모든 것을 다 갖추었기에 자만심에 들떠 있다. 그로 인해 달팽이가 느린 걸음으로 세상과 소통을 하는 동안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세상의 소소한 것들을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부터라도 달팽이를 스승으로 삼아야겠다. 언젠가는 느린 걸음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달팽이의 더듬이를 닮은 촉수를 달고 있는 나를 상상해 보면서 말이다.

카멜색 구두 주인은 자신의 구두가 밤색이 되었다는 것을 알긴 아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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